바이어들이 한국을 등지고 있다.

환어음 네고 등 무역금융시스템이 하루속히 회복돼 바이어들을 붙잡지 못할
경우 내년 수출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종합상사의 수출담당자들에 따르면 원화환율이 급상승하면서 동남아
지역에서 수입상담이 늘어나고 있지만 무역결제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일람불
(At Sight) 신용장(LC)을 고집할 수밖에 없어 바이어를 놓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국산기계류 단골바이어들이 많은 동남아의 경우 현지 경제위기로 인해
현금으로는 수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중국 등 제3국으로 발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협회 신원식 이사는 "최근 국제적인 조류로 볼 때 수출업체가
수입업체에 어느정도의 파이낸싱을 제공해야 원만한 거래가 가능하다"면서
국내 무역금융시스템의 마비로 동남아 중국 남미 아프리카 등 자금력이
부족한 지역의 수출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구교형 부장은 "최근 수출업체들은 환어음네고난과 함께 환율의
급등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수출담당자들이
보수적으로 수출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바이어이탈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무역금융의 경색으로 제조수출업체의 자금난이 악화된 점과 원자재수입이
원활치 못한 점도 바이어의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주)대우 관계자는 "배터리생산업체들의 경우 외환은행들의 수입LC개설
기피로 원자재를 제때 조달하지 못하는 등 생산스케줄을 잡지못해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바이어들은 원화환율상승으로 수입가격을 평균 20%이상
깎아줄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독산동에서 정밀금형을 제작하는 한 업체의 사장은 "최근 일본
등지에서 금형을 수입하겠다는 주문이 많지만 국내 실세금리가 30%에 이르는
등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현금결제가 아니면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이 국내납품에 비해 20%이상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환어음네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히려 자금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상사 관계자들은 "국내 중소제조업체들이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수출납기를 지키지 못해 바이어들이 거래선을 바꾸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LG상사 (주)쌍용 등 종합상사들은 환어음네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거래대금의 일부는 일람불로, 나머지는 유전스형태로 계약을 맺고 있으며
예전에 3개월단위로 거래하던 것을 한달 단위로 바꿔 급변하는 수출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전문가들은 무역금융시스템이 정상가동되지 않을 경우
환율상승에도 불구하고 바이어들의 이탈이 확산돼 내년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고 있다.

< 이익원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