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에 한국기업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많다.

특히 대기업그룹의 경우 안팎의 도전에 곱사등이가 돼있다.

갑자기 닥쳐온 변화에 기업들은 체질을 강화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과연 우리 기업들이 난관을 극복할 해결책은 있는지 AT커니의 이성용
서울지사장의 글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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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관련해 어떤 문제가 터지면 항상 동네북이 되는 것은 재벌들이다.

한마디로 희생양 신세인 것이다.

요즘에는 특히 재벌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최근 IMF가 보여준 재벌에 대한 태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재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물론 필자가 재벌의 과도한 몸집 불리기및 사업 다각화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재벌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러다보니 문제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같이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서구의 거시 경제정책, 특히 재벌과 관련한 정책을 한국의 경제 상황에
적용하려면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

좋든 싫든 간에 한국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재벌의 공이 컸으며
세계 11위가 될 만큼 경제 규모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날 재벌은 한국경제의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한국경제에 있어 재벌의 영향력은 IMF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크다.

30대재벌의 매출및 자산은 30%를 넘고 있으며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한다면
수치는 20%정도 증가한 것이다.

이같이 상위 30대 기업이 문자 그대로 한국경제를 통제한다.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한국경제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열쇠는 30대 재벌이 회생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재벌이 다시 일어서느냐에 따라 한국경제가 1백80도 변화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IMF의 재벌 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취지는 좋지만 효과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MF는 재벌 이외에는 한국경제가 처한 매듭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미시적인 차원에서 30대 재벌이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사실 단기적으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현재의 난관이 금융 위기에서 초래된 만큼 단기적인 해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금융 위기에서 어느정도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2,3월이 중요한
시점이다.

현재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기업의 항향가 결정될
것이다.

결국 방법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도록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하는 것이다.

첫째는 코스트(Cost) 리스트럭처링으로서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비용
감축 효과를 기대할수 있다.

비용 절감하면 임원 감축과 동일시 되는 경향이 있으나 이보다 훨씬
더 크고 포괄적인 개념이며,기업 운영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두번째는 인프라(Infrastructure)리스트럭처링으로서 비즈니스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다.

골프 회원권이나 부동산을 파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전체 비즈니스를 점검하고 재조정하는 것이다.

M&A가 이에 속하며 기존 비즈니스의 비핵심 사업은 축소하고 핵심 사업을
확대하는 작업으로 이해할수 있다.

셋째는 관계(Relationship)리스트럭처링이다.

경쟁업체 고객 공급업체 등 과의 관계를 재정립 하는 작업이다.

이는 산업 리스트처링이라고도 하며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의 완전한 변화를
필요로 한다.

EU가 공기업을 대상으로 행한 것도 바로 관계 리스트럭처링이다.

1960, 70년대 한국 경제를 보면 이와 같은 관계 리스트럭처링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정부가 국가 경제를 미리 만들어진 청사진에 따라 이끌어가기
위해 특정 사업을 특정 기업에게 허가한 것이다.

물론 문제는 이제 정부의 강제가 아니라 시장 원칙에 따라 리스트럭처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이 세가지 리스트럭처렁 중 적절한 유형을 선택 혹은 배합하는
것이 중요한다.

IMF 해법이 가진 문제점은 두번째와 세번째 리스트처링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며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이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기존 경제의 펀더멘탈(fundamentals)을 이해하지 않고 산업 구조 조정을
단행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최근 아시아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6%의
응답자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GE를 꼽았다.

이들이 GE에 대해서 부러워하는 점은 많은 분야에 진출해 있으면서도
성공적으로 흑자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논리를 적용한다면 재벌의 이른바 문어발식 경영은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GE의 정책을 채택하고 적자를 내고 있는 사업을 매각한다고 해보자.

문제는 한국 기업들 중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몇 안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국제 시장에서 경쟁을 할만한 능력이 되는 기업이 잘해야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물론 기업들도 공공연하게 시인하지는 않지만 이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선진 서구 기업의 기준으로 보자면 국내 기업중 70~80%는 사라져야 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미묘한 재벌의 상황을 고려할때 30대 재벌의 리스트럭처링은
어떡 식으로 실시해야 할까?

EU나 미국 기업들의 리스트럭처링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교훈은
감량 경영을 하지 않고서는 리스트럭처링을 할수 없다.

그렇다면 30대 재벌을 리스트럭처렁 하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될까?

광범위한 리스트처링을 실시한 선진 기업 450개를 벤치마킹한 결과 평균
24.6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AT&T와 같이 지속적으로 리스트럭처링을 진하는 기업은 이보다 짧은
17.5개월이 소요되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기업들은 IMF 압력이라는 외부 요인이 작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IMF 압력이 있는 상태에서는 이보다는 짧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리스트럭처링은 사실 정확한 출발점을 집어낼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서 비추어 보면 리스트럭처링 움직임은 리스트럭처링
발표가 있기 약 3개월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30대 재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같은 발표를 하기 전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급한 발표나 잘못된 발표를 했을 경우 심리적인 저항감을 불러 일으켜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으며 득보다는 실이 많을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표후 리스트럭처링의 단행이 늦어질수록 종업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사기가 저하된다.

리스트럭처링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기업들을 면 대개 발표 후 4.1개월
이전에 구체적인 리스트럭처링(자원, 인프라등의 매각 및 변동)에
착수하였다.

최근 많은 재벌들이 리스트럭처링 계획을 발표했으나 과연 몇 기업이나
이 발표가 미칠 영향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무작정 발표만할 것이 아니라 리스트럭처링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는 이슈
및 도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