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위기 대통령선거 청문회 등 굵직한 사건들로 떠들썩했던 정축년이
막을 내린다.

97년 글로벌 경제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유난히도 경제적인 사건이 많았던
한해였다.

그만큼 경제와 관련된 유행어가 많이 나돌았다.

경제가 최악국면으로 치닫자 YS실정을 빗대 "경제는 없고 갱제만 있다"거나
"YS불황"이니 "문민불황"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특히 외환위기속에 온국민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말은 IMF라는 세글자.

경제신탁통치라고까지 일컬어졌던 이 단어중 F자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F(낙제) FIRED(해고) FIGHTING(싸운다) FREE(해고된 뒤의 자유) 등 비관
적인 해석과 함께 FINE(그래도 나는 괜찮다)라는 자조섞인 표현도 등장했다.

경제를 망가트린 주범으로서 을사5적에 빗댄 (경축5적)명단이 나돌기도
했다.

불경기는 그동안 우리에게 생소했던 또 다른 단어들을 친숙하게 만들었다.

잇따른 부도여파로 "법정관리"와 "화의"는 일상 용어로 굳어졌으며 특히
자금난에 쫓긴 중소기업인들 간에는 "하루살이"라는 자조어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명퇴"러시로 "고개숙인 남자"나 "고개숙인 아버지"가 유행했고 전철을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신전철족"이 부각되기도 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취업재수"니 "취업대란"이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오랜 증시침체속에 주가각 폭락하면서 "1.2.3"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종합주가지수 100. 환율 2000원. 채권수익률 30%를 빗댄 것이다.

증권투자실패로 자살자가 많아 "바람쐬러 나간다면 조심해라"는 말도
나왔고 증권시장은 "지뢰밭"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외환시장이 마비되면서 "외환대란" "환란" "모라토리움"이란 말도 많이
거론됐다.

수뢰와 관련된 사건들도 많았다.

한보그룹과 현철씨 청문회에서는 증인으로 나온 박경식씨의 돌출적인
발언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는 반발하는 의원들에게 "의사 박경식이 국회의원보다 못한게 뭐냐"고
일침을 놓기도.

또 한보그룹의 정태수회장은 부하직원들의 진술을 반박하며 "머슴이
창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아냐"고 해 한때 "샐러리맨=머슴"이라는
단어가 회자됐다.

한보수뢰와 관련 구속된 홍인길의원은 "나는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깃털"
이라고 밝혀 "나는 깃털이다"는 우스갯 소리와 함께 과연 "몸통"은 누구인가
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오의 자초와 관련, 김선홍 전회장이 자신의 처지를 빗댄 ''황포
돛대''라는 말이 매스컴을 장식하기도 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와 관련, "군대 안가고 시간(돈)을 벌려면
이후보에게 물어보라"는 농담이 유행했다.

또 경제문제가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되면서 "정치9란"의 인사보다는 경제를
잘 아는 "경제대통령" 대망론이 나오기도 했다.

기업자금난이 극심해지자 일명 ''살생부''로 통하는 한계기업리스트가
나돌았고 이와 관련한 루머를 단속하기 위해 검찰이 칼을 빼들기도 했다.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지면서 검찰이 ''경제검찰''을 선언, 경제살리기에
나서는 지경까지 됐다.

2002년 월드컵 예선전도 전국민의 시선을 모았던 올해의 사건.

일본에서 우리팀이 승리를 거두자 경기를 중계하던 한 아나운서는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와관련 정치권에서는 "붉은악마 응원단을 놓고 색깔론을 시비를 제기할
생각이 없는가"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하기도.

이런 와중에도 우리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은 중고생들이 제작한 음란
비디오 "빨간 마후라"였다.

이 비디오에 출연한 최모양은 "단란주점 종업원으로 있을 때 나를 농락하던
어른들이 이제와서 나를 욕하는게 우습다"고 해 이 사회의 어른들에게 부끄
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장유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