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저력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는 60년대초 국민소득 87달러에서 시작하여 30여년만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

그 과정에서 1,2차 오일쇼크를 비롯한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는가 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듯한 기분도 느꼈으며 2002년 월드컵축구도 유치했다.

다만 정치가 사회 모든 분야중 가장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왔으나 이
분야도 선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모습은 IMF 신탁통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다소 혼란스럽다.

우리의 실체는 무엇인가?

국민소득 1만달러에 세계교역규모 11위, 조선 건조실적 세계 2위,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 철강생산량 세계 6위.

외형으로 보면 그런대로 괜찮다.

기업들도 내실보다는 외형 부풀리기에 치중해 왔으며 그 결과 한보사태이후
줄줄이 무너진 기업들을 보면 하나같이 외형위주의 무리한 사업확대를 추구한
기업들이다.

어떤 기업이 다른 한 기업을 인수하면 의례 매스콤에 보도되는 내용이
이번 인수의 결과로 이 기업의 재계 몇위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는 내용
이다.

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가.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그 기업은 병들고 있는데 겉으로는 이렇게 평가된다.

과연 그 기업의 인수로 기업전체의 내재가치가 향상되었는지, 경쟁력향상에
도움이 되는지가 분석되기 보다는 외형에 의한 순위가 보도된다.

이제 우리는 이런 허상,껍데기를 벗어 던져야 한다.

앞으로 재계 30대 기업, 이런 말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 재계의 순서라는 것이 빚덩어리 순서 아닌가.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내재가치를 내용으로 하는 우량기업순위라면 몰라도
매출액중심의 재계순위는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다.

금융기관의 경우 이미 우량기관 중심으로 우열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소비자(예금주)가 우량기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부가가치창출 중심으로 구조개편되어야 하며 정부의 조직도
간소화하여 민간에 대한 서비스제공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규제를 철폐 및 완화하는 길은 조직을 간소화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조직이 복잡하면 민간이 받아야 하는 도장의 수가 늘어나고 이에따른
업무의 비능률이 증가되고 책임의 소재도 그만큼 불분명해진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실질을 추구할때 지금의 위기
는 먼 훗날 또 하나의 경험담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임명수 <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