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릉수목원.

백두산 호랑이의 우렁찬 포효소리와 함께 아침이 밝아온다.

민족혼이 담긴 영물로 여겨져온 백두산 호랑이의 울부짖음은 새해를 맞아
희망의 소리로 주변의 고요함을 가른다.

호랑이해인 무인년 새해 통일과 경제회복이라는 국민적 기대속에 호랑이는
포효하고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백두산 산호랑이 두마리.

아침 동이 트자마자 호랑이 우리를 찾는 이경한 동물실장은 밤새 이상이
없는지를 살핀다.

호랑이도 이실장을 알아보는 듯 의젓한 자태를 뽐낸다.

이실장 등 광릉수목원 식구들에게 올해는 아주 특별한 해다.

지난해 중병에 걸렸던 호랑이가 완전히 회복돼 호랑이해를 맞이해서다.

백두산 호랑이는 한때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지난 94년 6월 중국 장쩌민(강택민) 중국주석이 한중수교의 선물로 보낸
암수 한쌍의 백두산 호랑이.

그러나 한국에 오자마자 과천대공원에서 무리하게 일반에게 공개돼 병을
앓기 시작, 한때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판정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실장과 이경호수의사 등 광릉수목원 식구들은 정성어린 치료를
계속해왔다.

동물실 사람들은 사비를 모아 웅담을 사다먹이기까지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덕분에 90kg까지 떨어졌던 몸무게는 2백50kg으로 다시 늘어나며 활력을
되찾았다.

이마에 선명한 왕자와 미간의 대자와 어울리는 거대한 몸집은 확연히
백수의 제왕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올해초에는 합방까지 계획돼 있다.

"백두산 호랑이가 그 늠름한 위용을 되찾았다는 것은 한국민족에는 남다른
의미를 가져요.

우리에게 백두산 호랑이는 무서운 맹수가 아니라 민족혼이 담긴 동물이잖
아요"

백두산을 정점으로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부터 남도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타고 오가는 게 백두산 호랑이다.

백두대간에 선명한 백두산 호랑이의 발자욱따라 한국민족의 기상도 남으로
북으로 뻗어갔었다.

민족 최대의 수난기였던 일제시대와 6.25때 백두산 호랑이도 멸종의
위기를 맞으며 한국민족과 운명을 같이했다.

백두대간을 횡단해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는 3.8선 철책에 막혀 남과 북을
오가지 못하는 처지도 같다.

백두산 호랑이가 죽음 직전에서 회복됐다는 사실은 그래서 특별한 희망을
갖게 한다.

"지난해말 한국경제가 사망직전에 까지 몰릴 정도로 중병에 걸렸잖아요.

호랑이해에 백두산 호랑이처럼 한국경제도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실장은 올해가 IMF의 고통을 이겨내고 경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나아가 잘려진 백두대간도 이어져 호랑이들이 시베리아부터 지리산까지
넘나드는 아름다운 모습도 꿈꾼다.

광릉수목원을 울리는 백두산 호랑이의 울음소리는 호랑이 해를 맞은 우리
모두의 도약을 위한 준비의 소리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