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의 산업전도사로 불리는 서울대 공과대학 이면우 교수가 난마처럼
얽힌 우리경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그동안 ''W이론을 만들자'' ''신사고 이론20''에서 우리의 독자적 경영철학을
제공했던 이교수는 앞으로 15회에 걸친 연재물에서 국가회생의 비법을
명쾌하게 내놓는다.

샘솟는 아이디어와 명철한 현실감각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교수의 글은 또한 IMF시대를 극복하는 바로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연재에 앞서 두문불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 교수를 편집국 박영배
부장이 먼저 만나봤다.

이교수는 하이터치연구소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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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부장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자금지원을 받기 불과
몇달전만해도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수께서는 80년대중반에 이미 "국가위기"를 지적했는데 어떤
근거에서였습니까.

<> 이교수 =저는 그당시 산학협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현장작업자들과 밤을 지새면서 작업을 했지요.

산업현장의 최일선에서 보았더니 전투(경쟁력)가 그날그날은 넘기겠지만
결과는 패배할 것이라는 느낌이었지요.

근로자들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증가율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며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기를 원했지요.

그러는 사이 헝그리정신으로 무장된 동남아의 후발국들이 한국을 모델로
삼아 좇아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기술을 공급해주는 미국과 일본은 더 많은 로열티를 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으면 망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망한다고 그랬지요.

그런데 80년대후반에 접어들자 우리는 멍석깔고 잔치에 들떠 있었습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는 선진국문턱까지 가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잔치분위기로 몰고 갔겠습니까.

정권의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환상속에 살게 만들고 따질 것없이 잘사는게 좋은게 아니냐는
그런 무드를 조장한 것이지요.

군대(산업현장)는 오래 버틸수 없게 돼 있는데도 말입니다.

<> 박부장 =IMF자금지원으로 어쨌든 우리현실은 비극이 돼버렸습니다.

비극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다고 보십니까.

<> 이교수 =약 2백년전에 실학자들은 일련의 개혁조치를 들고 나왔습니다.

하늘천 따지를 외우기보다는 요즘말로 과학을 키우자고 했지요.

실학자들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정파싸움에 밀려 참형을 당하거나 귀양을
갔습니다.

그로부터 1백년뒤 전라도 고부땅에서 녹두장군이 집강소를 차려놓고
농민들의 숙원사업을 이뤄보려 했으나 1년을 채 못견디고 참형을 당했습니다.

또 1백년뒤 중대한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개방을 요구하며 강화도에 들어온 배는 장총과 함포를 싣고 왔지만
동학난이후 1백년만에 들어온 "IMF배"는 국가와 기업신용평가를 매기는
대포를 싣고 M&A전문가들을 태우고 온 것입니다.

IMF자금지원은 우리의 업보같다는 생각입니다.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국제화시대에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부르짖어봐야 국제사회에서 외토리만 되고 경쟁에서도 점점 밀려나게
되지요.

왜 시장개방을 못합니까.

외국사람들이 끼이면 맘대로 할수 없기 때문인가요.

다시 말해 기득계층에 유리한 판이 깨지는게 두려워서일 것입니다.

강국이 들어오는것을 막고 우리끼리만 놀겠다는 심사지요.

또 그동안 공생관계에 있던 식솔들이 살아남을수 있을까 하는 기우도
있었겠지요.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끼리 의리만 따지면서 국산품애용같은 주장만
폈던 것입니다.

<> 박부장 =어차피 일은 벌어졌습니다.

IMF사태를 한탄해본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습니다.

수습에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교수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밤에 잠을 자다가 집에 불이 나 불길이 사방으로 번질때 계절에 맞춰 입을
옷을 들고 나올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냥 뛰쳐 나오겠지요.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잊어야 합니다.

잊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포기하고 알몸으로 원점에 서야 해결책이 나옵니다.

연연하고 미루다보면 모두 망하게 됩니다.

패러다임을 바꿀수 있는 호기이지요.

<> 박부장 =그렇다면 불행중 다행이라는 얘기인가요.

<> 이교수 =나는 IMF를 "하늘이 준 선물"로 생각합니다.

국가의 모든 구석구석에 변화를 몰고 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아직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구식의 발상이나 사고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볼수 있지요.

정부가 IMF와 이면협약을 해놓고도 그 내용을 보도했다고 화를 냅니다.

정말 고칠 생각이 있으면 제일 먼저 알려주고 협조를 구해야 옳지요.

말로는 전 국민이 힘을 합치자고 하면서 정보는 배급주겠다는 발상이
아니고 뭡니까.

그러면 원점으로 가기가 힘들어요.

어려운 일을 풀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지름길입니다.

<> 박부장 =국민들중에는 경제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 이교수 =구호에 면역돼 있고 동시에 경고에도 면역돼왔기 때문입니다.

모두 군사정권시대의 잔재이지요.

어려울 때는 직급이 높을수록 밤잠을 못이뤄야 하는데 우리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편안해집니다.

올라갈 수록 어려워지는게 선진국이고 반대는 후진국입니다.

<> 박부장 =이런 고난의 시기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이교수 =우선 정직해야 합니다.

모든 실상을 알리고 터진 둑을 먼저 막아야지요.

제 할일을 내팽개친채 강둑에서 고래고래 소리나 질러서야 되겠습니까.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경고나 투정을 하다보니 국민들은 하던 일도 공연히
손을 놓고 불평만 하게 됩니다.

<> 박부장 =교수께서는 산업경쟁력을 우리 경제의 한 축으로 강조하면서
모방보다 창조가 쉽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 이교수 =지난 30년동안 우리보다 열성적으로 모방을 많이 한 국가는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이 기간중 우리가 배운 교훈이라면 남의 것을 모방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모든 국민들이 단합해 밤을 새워가면서 모방을 해왔는데도
망했다면 역설적으로 모방보다 창조가 더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지상목표는 세계 1등보다 골고루 2등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 시대에는 2등은 살아남을수 없습니다.

<> 박부장 =그런데 우리 민족이 저력이 있는 건 사실 아닙니까.

<> 이교수 =그렇습니다.

동기만 부여되면 몰아붙이는 근성이 있지요.

지금이 우리에겐 절호의 찬스(기회)입니다.

IMF가 자금지원조건으로 내세운 것들을 이행하다보면 사람들이 그동안의
악습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포기해야 또 새길이 보이는 법입니다.

특히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모든게 뒤집어집니다.

모든 것이 뒤바뀔 때는 당연히 혼란이 오지요.

정돈된 시대에 꼴찌를 하던 사람에게 혼란의 시대만큼 좋은건 없습니다.

1백m 달리기시합에서 꼴찌로 달리고 있던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갑자기 심판이 "지금까지는 무효다.

뒤로 돌아 뛰어야 한다"고 선언하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꼴찌도 1등이 될수 있는 겁니다.

특히 정보혁명의 시대에 살아가는 비결은 현재 눈엔 안보이지만 앞으로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성취해놓은 것이 적기 때문에 몸집이
가볍습니다.

일부 기득권 계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민은 새로운 비전이 제대로
제시되면 그것을 대세로 밀어붙이리라 확신합니다.

<> 박부장 =가혹한 IMF체제에서 산업현장이 깡그리 무너지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 이교수 =상당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큰 무리없이 넘길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약하려는 개구리는 몸을 움츠리는 법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두 각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를 극복하자면서도
발톱끝으로 서보려는 개구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과거의 방식대로 계속합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쌓아간다면 얼마든지 산업을 반석위에 올려놓을수
있습니다.

<> 박부장 =이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발전해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겠습니까.

<> 이교수 =피할수 없는 과정이지요.

위기를 재주껏 넘기려고 하는 것은 수술을 받을 환자가 직장을 계속
다니겠다, 음주가무는 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병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위기를 꼼수로 넘기려고 합니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기를 넘기려고 하니까 자꾸 중증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 박부장 =변화에 민감한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항상 신선한
정보의 수혈이 필요하고 스스로가 끊임없는 채찍질을 해야 겠지요.

<> 이교수 =수시로 교육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수원의 구호 강사 교육시설 교육목표 수강대상 선발요령 등에서
방향을 대전환해야 합니다.

기존의 연수프로그램 범위안에서 교육훈련을 바꾸자고 하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남이 안한 것을 해보자,남보다 돈을 더많이 벌수 있는게 뭐냐, 이런 식의
연수가 이뤄져야 합니다.

<> 박부장 =결론적으로 우리민족에겐 비전이 있는 것 아닙니까.

<> 이교수 =역사적으로 목표만 확실하면 비전은 붙게 마련입니다.

비전이 붙으면 우리민족 특유의 집념에다 신바람이 일게 되지요.

임진왜란때 비록 성주가 항복하더라도 농민들이 끊임없이 항쟁한 사실은
목표가 제대로 설정되고 심성에 맞을 경우 우리민족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사회지도층이 목표를 확실히 설정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채웠던 족쇄를 풀어줘야 합니다.

우리 특유의 헝그리정신에 한민족의 특이한 정신을 가미하면 나라를
불같이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국가중흥은 시간문제입니다.

< 정리=김호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