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으로 금을 만들어 일확천금하려는 연금술사들의 탐욕이 화학의 발전에
큰 몫을 한 것처럼 사진도 유명한 그림을 똑같이 복제 떼돈을 벌려는 욕구가
그 발명의 동기였다는 주장이 있다.

카메라의 어원은 어둠상자라는 뜻인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다.

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르네상스시대의 화가이자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고 한다.

그러나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형은 어두운 방의 지붕 벽 또는 문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 벽에 외부의 풍경을 투사시킨 것으로 일찍부터
일식을 관측하는 방법으로 이용됐다는 또다른 주장도 있다.

어쨌든 카메라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M.다케르가 만든 것을 정식발명품
으로 인정함에 따라 1839년 파리에서 판매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발명품으로 카메라의 등장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멍에 렌즈를 끼워 보다
밝은 상을 얻었 수 있다고 저술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르다노, 조리개효과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D 바르발로 등 다른학자들의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다.

경제적으로 본다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떠오른 산업자본가 등 부유층의
그림 소유열이 좀 더 정확하고 다량의 복제가 가능한 기술연구를 촉발시킨
결과였다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진은 문헌상으로 입증되기는 1880년대에 지운영이 일본에서
그 기술을 배워 마동에 사진관을 차리면서부터 시작됐다.

갑신정변후 일본으로 망명한 개화파의 거두 김옥균을 암살하라는 밀명에
따라 특차도해포적사로 도일했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본국으로 압송된뒤
귀양살이까지 했던 그가 언제 사진기술을 배웠는지는 분명치 않다.

문화체육부가 올해를 "사진영상의 해"로 정했다.

한국사진사 1백20년의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21세기 한국사진문화 발전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디지털사진 비디오아트 등 날로 다양해지는 표현양식, 입체사진 홀로그래피
등 실용단계에 접어든 첩단영상매체가 예고하고 있는 새로운 영상시대에
대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봐 기대를 모은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