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수 < 코미트 M&A 대표 >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로 시작되는 옛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호랑이는 한국의 상징적 동물이다.

그러나 호랑이 해인 무인년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속에서 시작하는
지금 우리 기업들 모습은 한때 포효하던 시절을 기억으로만 간직한 채
병약해 쓰러져 가는 호랑이 같아 비감에 젖게 한다.

올해 IMF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전략적 수단으로 M&A는 더욱
뜨거운 현안으로 달아오를 것이며, 이 때 M&A 성패의 첫 단추가 경영이념에
달려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영이념이 M&A에서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사치앤드사치사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마케팅과 재무부문에 있어 각각 귀재로 알려진 찰스 모리스
사치형제에 의해 1970년에 설립된 지 6년후 영국의 컴프턴 파트너스사를
인수함으로써 상장사가 됐다.

그 후 1980년에는 영국 제1의 광고회사로 발돋움했으며 1981년에는
영국의 도랜드 광고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유럽 제1의 광고회사가 되었다.

유럽을 석권한 이 회사는 1982년 미국의 컴프턴사와 1983년 뉴욕의 중견
광고업체인 매카프리사를 인수하여 영국을 대표하는 국제기업으로
등장했다.

그 후 사치앤드사치사는 "영국 제1의 광고회사"에서 "경영서비스
산업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경영이념을 바꿔 M&A를 통해 경영컨설팅과
마케팅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세계 최대의 경영자문회사의 하나였던 헤이그룹을 1984년에 전격
인수했으며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미국의 얀켈로비치사를 인수함에 이어
롤랜드사,말보로 마케팅사등 4개월동안 4개의 마케팅 자문회사를 추가로
인수했다.

뿐만아니라 1986년에는 뉴욕 광고회사인 댄서사, 미국 대형 광고회사인
베커사, 그리고 세계 3위의 광고회사 베이츠사등을 차례로 인수해 드디어
세계적 경영서비스회사로 군림하게 됐다.

그러나 6년에 걸쳐 지칠 줄 모르게 진행된 기업 인수로 기업규모는
자체적으로 감당할 능력을 벗어났고 결국에는 광고업과 무관한 서비스
업체들을 인수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처분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이 사례는 경영이념이 지나치게 과욕적이면 결국 기업을 자기능력
밖으로 성장시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무인년 새해아침 "세계경영", "사업보국" 등 우리기업들의 추상적
경영이념을 되새겨 보면 지금껏 특정한 전략적 목적없이 문어발식 확장을
해온 우리 기업들이 오늘의 IMF시대를 자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병든 호랑이 처지인 우리 경제와 기업을 살리는 첫째 조치는 "자동차
세계경영", "김치산업 부문에서의 세계 제1의 기업" 등 우리 기업의
경영이념부터 작고 당차게 목적 지향적으로 바꾸며 이를 실천하는
고통스런 작업이 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