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시대의 충격이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IMF(국제통화기금) 긴급자금지원사태로 대표되는 역사상 초유의
총체적 경제난국을 거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기름값이 나라경제 전체를
바싹 움츠리게 만들고 있다.

2차석유위기를 겪은 70년대말과 그이후의 80년대초반후 근 수십년만에
다시 찾아온 고유가시대는 원유값 변동과 직접적 인과관계는 없는게
사실이다.

오히려 환율폭등과 세율인상이라는 2차적변수의 자극이 석유제퓸값을 껑충
뛰게 만든 결정적원인이라는 점을 부인할수 없다.

하지만 새해벽두부터 더욱 가속화된 고유가시대는 IMF관리경제체제라는
시기적 악재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전반에 이어 정유업계에도 적지않은
고통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환율이 사상유례없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한국경제를 벼랑끝으로 몰고
간 작년 10월이후 정유업계는 그 어느 업종보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잇다.

우선 SK(주) LG칼텍스정유 한화에너지 쌍용정유 현대정유등 국내정유5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환차손이 어깨를 짓누르면서 모처럼 쌓아놓았던 지난해의
상반기흑자가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이들5사는 고도화설비등 대규모시설투자가 마무리된 상태에서 수출및
석유화학부문의 호조에 힘입어 5사총계로 모두 3천2백35억원의 순익을
올려 96년 상반기의 1천1백84억원대비 1백73.2%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96년만해도 흑자규모가 극소폭에 지나지 않았던 현대정유와
한화에너지도 각각 2백75억원과 1백9억원의 순익을 내고 최대업체 SK는 국내
업체중 최초로 반기매출이 5조원을 돌파하는등 업체마다 내심 호황무드에
젖어있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환율급등의 후유증은 이들5사에 순식간에 자금부담 급팽창이라는
직접적 고통과 함께 전반적인 수지악화와 수요둔화라는 악순환의 굴레를
씌워주었다.

정유사들은 국가신용도 추락과 함께 외화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 상태에서
작년12월부터 수입신용장을 제때에 열지 못해 원유를 현금주고 사다쓰는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는 물론 일부에 한정된 경우이긴 하다.

그러나 원유1회도입에 수천만달러씩의 거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유사들이 얼마나 피말리는 싸움에 처해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정유사들은 환율폭등으로 흑자기조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은 물론
환차손규모가 도저히 감당키 어려울만큼 커졌다고 지적, 어떻게 결산작업을
해야 할지 냉가슴을 앓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약2천억원의 흑자를 예상했지만
환율이 요동친 바람에 11, 12월 두달동안 이의 몇배나 되는 환차손이
발생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정유사들의 환차손 규모는 원화의 달러환율이 1천원이었을때 추정한
조사치만 보아도 가히 얼마나 큰지 어림해볼수 있다.

한 증권관계 조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달러환율 1천원을 기준으로 볼때
환차손은 SK가 5천4백13억원으로 국내 전체 상장사의 4위를 차지했으며
쌍용정유도 3천40억원으로 8위를 차지했다.

증권업계는 정유사들중 한화에너지를 포함한 3개 상장사만을 조사대상으로
했고 비상장사인 LG칼텍스와 현대정유는 제외시켰다.

하지만 조사기준에서 환율을 1천원으로 잡았으나 실제로는 12월중
2천원에 육박한 적이 적지 않았다.

나아가 5개정유사 모두의 피해를 감안한다면 정유업계의 환차손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유업계는 환차손에 따른 무더기 수지악화와 함께 IMF관리체제후
한국경제에 몰아닥친 구조조정 태풍을 이제부터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할것이 분명하다.

저성장 실업대란에 이어 초긴축의 재정운용 투자감축등 경제전반의
군살빼기가 초고강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복판에서 정유업계는 수요부진에
따른 판로위축의 몸살을 피할수 없게 돼있다.

정부는 세수확대와 소비절약을 위해 이미 이달 1일부터 휘발유 경유의
교통세와 등유의 특소세를 크게 올린바 있다.

또 환율상승에 따른 환차손이 가격에 반영되면서 석유제품 값은 상승행진을
거듭해오고 있다.

이에따라 사회전반의 강도높은 허리띠 졸라매기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고유가체제는 석유제품의 소비감퇴를 촉발시키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유사들의
외형확대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 확실하다.

국내석유제품 소비는 지난해 11월말까지 모두 6억7천만배럴에 달해 지난해
같은기간의 6억4천1백만 배럴대비 4.5%증가, 이미 전년증가율 6.3%보다 1.8%
포인트가 둔화된 상태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올해의 경우 석유제품 소비가 저성장의
단계를 넘어 마이너스성장국면으로 후퇴할수도 있다는데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휘발유값이 당 9백원을 넘어섰던 작년 11월말부터 벌써 소비감퇴의 신호는
정유사들의 판매일선 곳곳에서 켜졌었다.

가격인상에 대비한 가수요가 겹쳐 11월중 석유제품 전체소비는
6천6백90만배럴로 전년동기 대비 7.7% 증가했지만 유가인상의 충격이
가시화된 12월초부터 휘발유 출하량은 종전의 하루 약20만배럴에서
16만배럴수준으로 급감하는 양상을 보였다.

경유는 산업용연료유의 소비둔화를 반영, 11월까지도 소비량이 전년보다
3.1% 준 1억4천9백81만배럴에 그친데 이어 감소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게
정유업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업계관계자들은 정유사의 손익구조가 정유이외의 석유화학, 윤활유,
발전사업 등의 수익으로 정유부문의 마이너스를 메우는 비정상적 궤도를
밟아왔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유가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유사들 역시
아무런 실익도 없이 수지악화와 수요감퇴의 험난한 이중악재를 헤쳐나가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정유산업이 IMF시대가 던져준 험난한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