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하이터치 공동기획-

이면우 <서울대 교수>


킹스턴 트리오(Kingston Trio)가 부른 노래로 유행한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반전가요가 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무덤속으로 가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비탄해 하는 가사내용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세계시장 곳곳에서 경쟁력을 잃고 시들어
가고 있는 우리 산업의 전통을 풍자하는 것 같다.

미국 시장에서 우리 수출품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 변화를 보면, 우리
산업이 밀려나는 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1988년도에 우리제품은 미국시장에서 4.6%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1997년
6월 조사자료에 의하면 2.6%에 그치고 있었다.

대미수출액을 보면 1995년에 2백41억불이었던 것이 1996년에는 2백16억불로
감소하였다.

같은 기간중에 중국은 2%에 시작하여, 1997년 중간집계에 의하면 6.5%에
도달하였다.

중국은 세배 넘어 약진을 했고 한국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변이 없다면 이와같은 하락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들도 한때에 세계시장에서 2등까진 올라갔던 꽃들이 많이
있었다.

백화점마다, 쇼핑센터마다 한국 제품이 없으면 제품 진열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한때 세계2등의 꽃들이었던 우리산업은 어떻게 되었나?

1970년대에 가발 산업은 세계2등 수준까지 올라갔었으며 목재합판, 섬유와
함께 3대 수출품목이었다.

1970년에 목재합판 수출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숫자인 1억불 가까이까지
올랐었다.

부산에 웬만한 연안은 모두 이 목재회사들의 하치장이었다.

목재회사들이 부산 바닷가에 있던 부동산만 꽉 잡고 있었어도 국내 1위
재벌기업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기세좋게 나가던 가발산업, 물건이 모자라 못팔던 목재합판 산업은
1978년 이후 급격한 시장감소를 보였다.

가발, 목재회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80년대는 면방과 봉제산업이 세계2등까지 올라갔었다.

1960년대 중반 자료에 의하면 국내 10대 재벌중 4대 재벌이 면방재벌, 2대
재벌이 목재재벌이었다.

60년대에 10대 재벌에 포함되었다면 그간의 경제성장 추세로 보아
지금쯤은 세계 1백대 기업수준은 되었을만 하지 않는가?

봉제 완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매년 23%의 감소세를 보이며 줄어들었고
부가가치가 높았던 의류수출은 매년 10%씩 감소하여 왔다.

옷을 산더미 같이 만들어 수출하던 봉제회사, 국내산업의 가장 큰 기둥
역할을 담당하던 면방회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90년대에 사라진 꽃들은 무엇인가? 90년대 초까지 신발은 단연코 세계
2등의 자리까지 올라갔었다.

우리 신발은 1990년에 44억불을 수출하였으나 1995년에는 16억이 채
못되는 수출액수에 그쳤다.

5년만에 매년 20%씩 감소하여 크기가 3분의1로 줄어든 것이다.

자전거 산업은 어떤가?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 자전거는 미국과 캐나다 자전거시장의 15%를
점유하였었다.

90년대 초반에는 연간 1백30만대를 자랑하던 공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공장은 1995년에 이르러 30만대 채우기에도 급급하였고
1996년에는 한대의 자전거도 수출하지 못하였다.

이에비해 대만과 중국산 자전거의 북미 시장점유율은 93%로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한때 세계시장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던 자전거 산업은 모두 어디로 갔나?

꽃들의 퇴장을 보며 느끼는 우리 한민족 산업의 전통은 무엇인가?

세계 2등까지는 거품을 물고 다리에 쥐가 나도록 이어 올라가는데, 2등만
되면 하체가 풀어지면서 방황하다가 이윽고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끈기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수출산업들도 별도의
혁신적, 필사적 조치가 없다면 기어코 이 전통을 이어갈 것이다.

사라질 꽃들은 무엇인가?

2000년에 사라질 산업은 무엇인가?

현재 남아있는 몇 안되는 산업중에서 사라지는 것이 나올 것이다.

철강 전자 반도체 자동차가 남아있다.

철강산업의 경기지표가 흐리다는 것은 신문보도로 잘 알것이다.

조강생산력은 가히 세계적이나 중국과 동남아의 제철소 건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추격을 피하려면 고부가-특수강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텐데
일본이 지키고 있는 이 분야로의 진출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전자산업은 어떤가?

가전제품의 대미수출을 보면, 컬러TV는 전년도에 비해 약 30%가
감소되었고, VCR, 은 43%, 음향기기는 약 10% 감소하였다.

이미 상당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반도체는 어떠한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반도체회사의 수익율은 1년 사이에 93%나
감소되었다.

아마도 국제시장여건의 급격한 변화를 이유로 들 것이다.

천수답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1995년 미국 시장의 2.2% 차지했던 한국산 자동차는 1997년에 1.8%에
그치고 있다.

필자는 1997년 4월에 미국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 사는 교포로부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1만8천달러로 가격표가 붙어 있는 일본 자동차를 사러 들어가면 자동차
판매원이 3천달러를 나중에 돌려주겠다(Rebate)고 제안한다고 하였다.

그 옆 대리점에 있는 한국산 자동차의 정가는 1만7천달러로 일제보다
싼듯 하지만 한 푼도 못 돌려주기 때문에 결국 한국산 자동차보다 일본
자동차가 2천달러나 싼 셈이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한국 자동차는 1만7천달러, 평판이 좋고 고장이 없는
일본 자동차는 1만5천달러인 셈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어떤 차를 고를 것인가?

애국심이 투철한 교포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국산을 살 것이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 산업의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가발과 목재, 면방과 봉제는 모두 어디로 갔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산같이 쌓여있던 우리 신발과 자전거는 모두 어디로
갔나?

이제 남아있는 철강, 전자, 반도체, 자동차산업 중에서 사라질 것은
또 무엇인가?

이렇게 남아있는 산업마저 모조리 사라지고나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1980년 이후 임금인상 투쟁이 전 산업에 퍼지면서 우리의 유일한 장점이던
저임금은 점차 고임금으로 올라갔고,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던 산업현장은
잦은 파업과 작업의욕 상실로 저효율로 떨어졌다.

저임금-고효율이었던 우리산업이 고임금-저효율로 바뀐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마땅히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싱가포르도 1980년대 초에는 우리와 비슷한 운명이었다.

값싼 가전제품을 조립하던 싱가포르은 임금상승과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짐에 따라 국제경쟁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조치를 취하였다.

즉, 임금이 상승하여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전업계에 4%의 기술세를
추가로 몰리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기업의 반응은 대개 두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기술세를 낼 수 없는 기업들은 재빨리 업종 전환을 서둘렀다.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기술세를 내느리 차라리 연구개발을 하겠다고
하면서 신제품개발과 사업구조 조정에 열을 올렸다.

우리나라 정부는 어떻게 하였는가?

각종 지원정책을 남발하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니 업종전환을 고려하던 기업인들도 돈 받는 재미를
잊을수 없어 업종전환을 보류하였다.

산학협동연구를 하다보면 적은 예산으로도 추진될 수 있는 연구개발과제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면 착수하겠다고 하였다.

마치 정부가 강력히 요청을 해서 할 수 없이 기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발언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여 망했다고 분개하는 기업인도 보았다.

싱가포르 기업인들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보겠는가?

대만은 1980년에 정보산업 육성책에 관한 근본적인 체계를 확립하였고
기업인들에게 핵심부품 개발을 유도하였다.

우리는 대규모 국책연구소 단지를 만들었고 대만은 대규모 기업단지를
만들었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이미 산업 구조의 틀을 거의
강제적으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있었으나, 우리는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여야 한다"며 변신을 미루었고 온 몸으로 병이 퍼져나가는 것을
방치하였다.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홍콩과 싱가포르는 1만불 소득 이후 10여년 만에 2만불 소득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흔히 아시아의 네마리의 용이 있다고 하였다.

세마리 용은 모르겠으나 우리는 애시당초부터 용이 아니였다.

용이 남의 제품을 모방하는가?

용이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헤메는가?

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세마리 용은 일찍이 시장을 개방하여 자립능력을 키우고자 꾸준히 변신을
강조하였고 망할 기업은 가능한 빨리 망하게 하는 정책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어떠하였나?

세계 진출은 정부가 돕는 경우에만 하였고 국내시장에 집착하면서 해묵은
국산품애용 구호에 의존하였고 공정한 해외 시장경쟁을 외면하였다.

기업이 망하면 정부의 책임이며 손해가 나는 기업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이상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환자인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장기간의 집중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가 된 것이다.

사라진 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변화하는 요인에 대한 대책을 소홀히 하였고, 핵심역량이었던 가격경쟁력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하였다.

시장 여건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위기를 맞을 때마다 경기가 풀리기만
기다렸다.

사양산업의 배경에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무시되었다.

국내시장의 보호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졌고 경쟁력이 약해지면
정부에 의존하였다.

사라지는 꽃들은 온실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우리 제조업은 작년에 1천원어치를 팔아 10원도 안되는 이익을 남겼다.

이런 사업을 도대체 왜 하는가?

이제 온실 속에서 나와 바람을 몰아치는 국제경쟁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사라진 꽃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계제일을 꿈꾸는 기업만이 살아 남을 수 있으며, 정부에 의존하고,
국산품 애용을 강요하고,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기업은 모두 사라지는
꽃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주위를 둘러 보고 앞으로 사라질 꽃들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피어있는 꽃들이 명심해야 되는 사항은 무엇인가?

앞으로는 수출단가는 계속 하락할 것이며, 달러 강세에 따른 추가 인하
압력도 드세어질 것이다.

유일한 활로는 무엇인가? 정부에 의존하지 말아야한다.

품질이 나빠도, 가격이 비싸도 국산품이니까 애용해야 한다는 협박을
중지하여야 한다.

독특한 발상을 전도하여야 하고,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하며 후발 경쟁국이
추격을 포기하도록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한다.

온실속의 꽃은 국제시장에서 죽는다.

야생화만이 살아남는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