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신 <우리기술투자 사장>

한보사태, 기아그룹 부도, 종합금융회사의 부실화, 국제금융기구(IMF)
구제금융등 유난히 어두웠던 지난해의 경제뉴스들 중에서 유일한 희망을
제공한 것은 벤처기업의 활성화였다.

벤처업계는 지난해초부터 다시 활기를 찾으면서 상반기동안 창업이
활발했다.

6개의 창업투자회사가 신설되고 16개의 창업투자조합이 결성돼
3천2백억원의 자금이 유입됐으며 창투사와 신기술금융회사가 약 8천억원의
자금을 벤처기업의 주식인수에 투자했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돼 자금 입지 및 인력조달면에서
벤처기업을 지원할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했다.

대학의 창업동아리, 벤처마트, 창업로드쇼, 인큐베이터사업등 창업에 관한
지원행사도 어느해보다 활발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이후 급격하게 몰아닥친 외환위기, IMF구제금융으로
인해 벤처기업의 창업 및 지원열기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정부나 경제계도 실패한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처리에 몰두하고 있어서
모처럼 제정된 벤처기업 육성법률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계획됐던
투자조합의 결성도 지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할 때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기업에 경쟁우위를 빼앗겨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던 미국의 자동차산업등 전통산업에 경쟁력을 제공하고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조해 지금의 건실한 미국경제를 재건한 주역이 벤처비즈니스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아니라 벤처비즈니스는 IMF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에
적합한 기업형태이다.

현 외환위기의 원인은 국제수지 적자를 충당하기 위한 종합금융회사들의
무분별한 단기외화차입, 일부 재벌기업의 부도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에
그원인이 있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인 원인은 불합리한 국내기업의 지배구조, 그러한
지배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상호출자 및 지급보증과 과도한 차입경영, 이에
수반되는 기업의 투명성 부족과 대주주에 의한 기관 및 소액투자가의
권익침해라고 할수있다.

이러한 잘못된 기업 관행 때문에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시장에 대해 실망해
IMF구제금융 결정 이후에도 투자를 재개하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은 설립부터 기관투자가의 투자를 받아 기업을 경영하고
기관투자가들이 기업경영에 참여해 경영지도와 감독을 수행하며 철저한
공인회계사의 감사를 받게 된다.

때문에 기업의 투명성이 매우 높고 기관 및 소액투자가의 권익을 존중하며
부채비율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벤처기업들이 다수 상장돼 있다면 한국 주식시장의 투명성은 매우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 신뢰도 다시 얻을수있을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가들이 상장시장에서 철수하던 지난해 12월
코스닥시장이 외국인에 개방돼 몇몇 벤처기업에는 외국인투자가 이뤄졌다.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 벤처캐피털회사 벤처기업들의 부단한
공동노력이 있어야 한다.

일천한 벤처캐피털의 역사와 향후 예상되는 고금리시대를 감안할 때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코스닥시장을 벤처기업 전문의 독립된 증권시장으로 육성한다는
정부의 방침을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벤처기업 투자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벤처기업 주식의 유동성 부족이다.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고 투명성이 높은 새로운 코스닥시장을 통해서만
이러한 유동성을 확보할수 있다.

다음으로는 연기금들이 적극적으로 벤처기업이나 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하도록 강력한 정부의 권고와 유인책이 필요하다.

벤처기업 육성법률에 의해 연기금이 벤처기업에 투자할수 있는 제도는
마련됐으나 아직은 투자수익률에 관한 과거기록의 부족, 투자실패에 따른
책임 등으로 인해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있다.

연기금의 투자자금 관리자들도 벤처기업이나 코스닥등록 주식에 대한
투자가 상장주식의 투자보다 더 안전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부도율이 일반 기업의 부도율보다 훨씬 낮다.

벤처기업 창업을 위한 기반시설을 갖춘 벤처빌딩, 미디어밸리 같은
벤처단지를 조성해 창업을 지원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벤처기업은 한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 속성상 많은 기업이 모여있으면
상호 정보와 기술교류에 의한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동안 정부는 벤처기업 창업을 촉진하기 위한 많은 제도를 마련했다.

이러한 제도들이 벤처붐에 편승한 일과성의 과시행정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선 이들제도가 지속적으로 시행되도록 지도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정부에
마련돼야 할 것이다.

벤처붐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선 벤처기업인들과 벤처캐피털회사들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일부 벤처기업들이 재벌 기업의 잘못된 기업관행을 답습하다가 도산한
것이나 많은 창투사들이 단기자금을 차입해 중소기업에 대출을 일삼다
위험한 상황에 직면은 것은 좋은 경종이 된다.

벤처기업인들과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 그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벤처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