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제도개선안이 나오자마자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해마다 불입액이 늘어도 연금수령액은 줄게돼 있어 가입자들은
불만이다.

외형상으로는 28조의 공룡같은 존재지만 안으로는 중병에 걸려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IMF 증후군으로 머리가 아픈 봉급생활자들은 연금의
부실화로 노후에대한 생계까지 우려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누가 국민연금을 이지경으로 만들었으며 구조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
파헤쳐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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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선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금수급액을 대폭 줄인데 있다.

40년간 연금을 낸 사람의 경우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70%에서 40%로
낮아진 것이다.

만약 이대로 시행이 된다면 사실상 노후복지는 물 건너 간 셈이다.

실제로 예를 들어보자.

개선안은 가입자의 생애평균소득을 가입월수로 나눈 월평균소득액의
40%를 지급하는 것으로 돼있다.

일반 기업의 부장까지 마친 봉급생활자더라도 월평균소득이 2백만원이
넘기 힘들다.

이 경우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월 60만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노후 생활보장 차원의 연금이 아니라 손자들 용돈주기에도
빠듯하다.

월평균소득이 더 낮을 수 밖에 없는 근로자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마디로 "노후복지를 보장한다"는 연금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중 금융기관의 개인연금상품과 비교해봐도 이번 개선안이 "개악"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개인연금은 10년동안만 매달 12만5천원을 내면 월 40만원의 연금을 탈 수
있다.

그것도 국민연금보다 5세가 낮은 60세부터다.

차라리 국민연금가입을 의무화하지말고 자율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래서다.

이에따라 급여수준이 적어도 현재 국제노동기구의 권고기준(40년 기준
53%)을 넘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들도 "연금자체의 의미를 살리기위해서는 급여수준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이번 개선안에서 노후복지가 뒷전으로 밀려난 원인은 한마디로
정부의 부실한 연금관리 때문이다.

당초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급여수준을 70%로 하면 2031년에
연금이 완전 파산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문제는 이같은 실정에 대해 먼저 책임을 지지않고 국민들에게 고통분담만
강요하는 데 있다.

방만한 운영과 공룡화된 조직에 대해서는 손 대지않고 국민들의 양보만을
바라는 것이다.

정부가 쌈짓돈처럼 갖다 쓰게 돼있는 현재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없다.

이처럼 국민연금제도는 그 의미를 잃었다.

국민들의 불신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대해 복지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돈을
맡길려면 먼저 정부가 믿음을 줘야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연금제도에 대한 원칙의 확립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연금의 취지에 많게 노후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급여가
설정돼야 한다.

보험료도 소득재분배라는 취지에 따라 적정한 범위에서 결정돼야 한다.

연금재정안정화와 더불어 노후생활이 보장되는 "적당한" 보험료와
"적정한" 급여수준을 저울질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