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네버다이"와 "에이리언 4".

첩보영화의 고전과 SF영화가 연초 극장가에서 맞붙어 관심을 모은다.

2편 모두 히트 시리즈물인데다 여성을 주역으로 내세워 흥행결과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007 네버다이"는 무술유단자인 동양여성(양자경)에게 본드 못지 않은
역할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전 시리즈와 차이를 보인다.

"에이리언 4"에서는 주인공 시고니 위버와 함께 할리우드의 신예
위노나 라이더를 등장시켜 둘의 대조적인 면을 극화시켰다.

"007네버다이"의 기둥 줄거리는 루퍼트 머독을 연상시키는 미디어제왕
(카버)의 야욕과 이를 저지하려는 첩보원들의 전투.

카버는 인공위성을 조작, 공해상의 영국 구축함을 중국 영해로 유도하고
중국전투기를 출동하게 만든다.

목표는 전쟁분위기를 조성한 뒤 가장 먼저 보도해 전세계 특종을
만드는 것.

그러나 이 계획은 영국과 중국의 첩보원인 본드와 양자경에 의해
무산된다.

이번 시리즈의 흥행 포인트는 양자경의 무술과 이국적인 베트남 거리풍경.

다닥다닥 붙은 지붕 사이나 심해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시선을 뗄수
없게 만든다.

줄거리 전개상 핵심역할을 한 BMW 자동차는 "피스 메이커"(드림웍스)의
악몽(BMW가 벤츠에 무참히 깨졌다)을 씻으려는 BMW사의 로비에 의해
등장했다고 한다.

17일 개봉.

"에이리언4"는 지구와 우주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묵시록과 강력한
여성전사의 활약상 묘사가 섞여있는 SF영화다.

감독 장 피에르 주네는 "델리카티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만든
프랑스감독.

줄거리는 가공할 힘을 지닌 외계인과 인간의 싸움.

그런데 이 싸움은 다른 SF물에서처럼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아군과 적의 2분법 구도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

쳐부숴야 할 적(외계인)은 바로 인간의 몸에서 나온 생명체며 이들은 늘
인체를 토양삼아 자라난다.

적을 죽이려면 아군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기막히는 아이러니는 이
작품에 비극적 색채마저 부여한다.

주인공은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아온 시고니 위버.

그의 아마조네스적인 분위기는 전편보다 더 강화됐다.

"에이리언4"는 3편 마지막에서 몸속의 외계인을 없애려 용광로에
뛰어들어 죽은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과학자들에 의해 되살아나면서
출발한다.

문제는 추출된 그의 DNA에 외계인의 DNA가 섞인 것.

여기서 배양된 외계인은 무모한 과학지상주의자들에 의해 인체와
결합되면서 무한대로 자란다.

외계인의 증식때문에 벌어질 가공할 결과를 막으려는 리플리는 일단의
우주해적들과 함께 사투를 벌인다.

노란 피와 끈끈한 진액을 뿜어대며 꿈틀거리는 외계인이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은 속이 메스꺼울 만큼 생생하다.

"에이리언 4"는 과학맹신에 대한 비판을 명분으로 내세운 또 한편의
화려한 할리우드 SF물이다.

10일 개봉.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