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을 받은 후쿠야마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군주제 파시즘
사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들을 무너뜨리고 인류 최후의 정부체제가
되었다"고 못박았다.
이에 미국 유럽 등 사회과학계에선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이라는
옹호론과 "단선론적 역사관에 입각한 오류"라는 비판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한국학계에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 예찬"이라는
소장학자들의 비판적 논문만이 2~3편 발표됐을 뿐 논쟁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장학자들의 견해에 박찬국 호서대교수(철학)가 포문을 열었다.
계간 "열린지성" 3호에 기고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대한 고찰"에서
"후쿠야마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비판은 후쿠야마를 제대로 읽지 않고
이뤄진 비판이어서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
박교수는 이어 "후쿠야마의 논지는 국내 일부학자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자유민주주의의 일방적 승리에 대한 찬가가 아니다"고 전제, "칸트와
헤겔 등 역사철학자의 통찰에 입각해 현재시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려는 진지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후쿠야마의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이념형"이다.
박교수는 후쿠야마가 인간에게는 생존욕구보다 "인정욕구"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헤겔이론에 근거,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다른 어떠한
정치사회체제보다 인간을 존중하는 우월한 사회구성원리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임상우 서강대교수(서양사)는 같은책에 기고한 "박찬국 교수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경제원리인 자본주의는
평등하고자 하는 인정욕망을 제대로 충족시키기 어려운 체제"라며
"인정욕망을 채울 때 역사는 끝난다는 후쿠야마의 가정에 따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종착역이 되기 힘들다"고 밝혔다.
임교수는 "후쿠야마의 글은 대부분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 승리했음을
경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며 "이는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가 최선임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근저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