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대도시주민들의 생필품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처럼 국민과 정부가 동참해 난국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다"며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군부는 여전히 수하르토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고위층
에서는 "달러팔기"에 나서자고 촉구하는 등 민심동요를 차단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카르타는 9일에도 물가인상의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사재기가 이어져
상점 곳곳에서 설탕 식용유 쌀 등이 동이 났으며 일부 식품은 1인당 판매량을
제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백화점 점원은 "사람들의 사재기가 단순한 열풍이라기보다는 공포에
가깝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시민들의 사재기는 회교도들의 라마단 금식월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저명한 인도네시아대학의 안와르 나수시온 교수는 "이제 기업이나 외국
투자가들을 확신시켜야 하는 단계를 넘어 보통 가정주부들조차도 등을
돌리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녀(시티 하르디얀티)는 자신도 달러내놓기에
동참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장롱속의 달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 "루피아
사랑"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루피아는 약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일부에서는 다시 관리변동제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한편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군부는 이날
"정부를 믿으라"고 촉구하는 한편 의도적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특정세력"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경제를 장악하고 있어 사회불안 때마다 폭력의 타깃이 돼왔던
중국계 상인연합 등은 군부의 특정세력 운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