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은행장간의 9일 간담회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김당선자가 여러차례 관치금융을 비판하며 금융기관이 파국의 책임을 크게
져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당선자는 그동안 할말이 많았다는 듯 다른 행사때보다 훨씬 긴 모두연설
을 했고 은행장들은 김당선자의 발언을 일일히 메모하며 경청했다.

김당선자는 금융기관들이 과거 "권력의 시녀"이었고, 현재에도 보신주의적
이며 소극적이라고 질타했다.

"우리는 중소기업에 대해 못할일을 많이 했다" "금융계도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에게 부담되는 금융기관은 오늘날의 여건에서 살기 어려울
것이다" "새 마음을 갖추고 할일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김당선자는 "관치금융에 시달리고 안주했던 국내 은행들은 동지섣달
설한풍에 내몰려 외국 금융기관과 경쟁하는데 힘들 것이다"고 말하는가 하면
당부를 할때면 "은행들의 입장도 이해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도 했다.

김당선자는 자신의 당부가 또다른 "관치금융"이라는 오해를 살까봐
"재경원을 통한 실적점검" 발언여부를 놓고 무척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은행들이 외압에 저항하고 자주적으로 대출을 결정하라고 강조하면서
수출입및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당부하고 그 결과를 점검하겠다고 하는
것은 얼핏 모순된 것으로 비칠수 있기 때문이다.

김당선자가 "제재"라는 말을 쓰지 않고 "협조한 은행에 대해서는 감사
하겠고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고 돌려 말한 대목에서 이런 고민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러나 "내가 살기위해 나라를 망쳐도 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리고 수출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경고발언"이었다는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김당선자가 은행장에게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적극 유도해줄 것을 당부한
부분은 주목할만하다.

대기업들이 자율구조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2차적으로 은행들이 개입하고,
그래도 안될 경우에는 정부가 준비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반강제적인
조치가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당선자는 지방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여러번 강조해 앞으로
금융기관간 인수.합병을 강력히 유도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당선자는 "국내에서 다른 은행보다 낫다는게 목표가 돼선 안된다"며
"자구노력과 필요하다면 인수.합병, 대형화를 추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이런 질책과 당부와 함께 정부의 "지원"도 얘기했다.

그러나 지원은 은행들의 노력이 전제되는 것이었다.

김당선자는 "(은행들이) 자주성을 지키며 사명을 다할 때 나는 그 옆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또 "그런 자구노력 등을 할 때 정부는 도와줄 것이다"고 언급
하기도 했다.

어쨌든 김당선자는 이날 <>수출입및 중소기업지원 <>대기업의 구조조정유도
<>관치금융근절 등을 거론할때는 그 어느때보다 목소리를 높였고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이런 기회를 만들어 격의없는 대화가 이뤄지도록 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 허귀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