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제도가 개선된다해도 기존의 기금운용방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국민연금의 부실화는 낮은 보험료와 높은 급여체계뿐 아니라 방만한 기금
운영에서 비롯된 탓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쌈짓돈"이 되버린 국민연금의 현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건전운용은 힘들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예금의 강제예탁규정의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공공자금관리기금법 5조 1항은 "국민연금 등 각 기금관리자는 여유자금을
관리기금에 예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금운용에 드는 경비와 연금지급액 등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정부가 마음대로 쓰겠다는 소리다.

이에따라 지난 연말 현재 27조3천8백억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적립금중
18조8천7백억원이 공공관리기금에 들어가 있다.

국민들이 허리띠를 조이며 적립한 돈을 정부가 손쉽게 갖다 쓰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정부가 갖다 쓰는 돈에 대한 이자율이 형편없이 낮은데다 향후
원금상환조차 불투명하다는데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으로부터 5년만기상환조건으로 돈을 빌린다.

하지만 채권발행 등 원금상환을 보장하는 조치가 없다.

예수금증서라는 종이쪽지 한장만 써 줄 뿐이다.

빌린 돈의 만기상환일이 다가오면 다시 국민연금에서 가져온 돈으로
갚으면 된다.

오늘 1조원을 갚고 내일 5조원을 가져가는 식이다.

이러니 재정부실화는 예정된 수순이고 원금상환은 기대하기 힘들다.

낮은 이자율로 인한 기회손실비용도 엄청나다.

시중금리보다 2%포인트가량 낮은 금리때문에 지난해까지만 8천2백4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2031년이면 기금이 바닥날 것이라는 충력적인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래서다.

저부담 고급여라는 구조의 문제이전에 이같은 엉터리 기금전용이 만성화돼
있었던 것이다.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구성도 부실화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

위원회는 재경원장관을 위원장으로 하여 4개부처장관을 포함한 정부대표
9명과 농어민대표 2명, 사용자대표 2명, 근로자대표 2명 등 총 15명으로
구성돼있다.

납부자들의 의견제시는 원천적으로 봉쇄된 구조다.

더구나 재경원 국고국장이 간사를 맡아 회의진행마저 형식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95년에 한번 회의가 직접 소집된 적이 있을 뿐
그동안 운용계획수립 등 중요한 일정도 모두 서면으로 대체해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재경원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다.

군인 공무원 교직원 사학연금 등 모든 연금에 이같은 부실요인이 많다.

이에따라 국민연금운용의 건전성을 위해서는 강제예탁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와함께 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에서 독립된 기구로 승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재경원장관이 위원장을 겸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대표자수를 늘려 납부자가 기금운용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사용한 돈에 대해서는 신문공고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투명성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김상균 서울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꾼 돈을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올려 언제 상환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며
"기금운용이 투명해야만 국민들이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