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오 <환경계획학 박사>

20세기 도시를 흔히 회색도시 또는 복제도시라 한다.

그것은 개성과 특징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연속된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의 질을 누리며 살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체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도시는 우리가 가꾸고 만드는데 따라 상당부분 변화될수 있다.

우리 도시는 단적으로 말해 너무 획일적이다.

도시의 매력 가운데는 오래된 거리에서 풍겨 나오는 역사적인 향기가 있다.

인정 어린 훈훈함이 있어야 하고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가 거리 곳곳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도시를 보자.

인간다운 훈훈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줄수 있는 공간, 정서와 낭만의
거리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삭막한 거리에서 우리는 살아 왔고,살아 가고 있다.

60년대부터 근대화와 수출만을 위해서 매진했고 그 결과가 오늘 한국의
총체적 위기로 귀착되고 있다.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새로운 것, 선진화된 것만이 최고의 가치, 큰 것과 화려한 것이 바람직한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쉼없이 달려온 그 길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온고지신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일본의 경우 고도성장 이후 도시의 발전과 역사문화를 잘 조화시켜 나가지
않았던가.

도시경관계획을 세우고 마치쓰쿠리(지역가꾸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도 경제효율을 위해 도시의 역사성을 소멸시키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교통및 환경을 악화시켜 왔다.

결국 우리가 도시 거주인구를 감소시키고 야간활동이 쇠퇴한 죽은 도시로
만들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도시 문제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우리가 어려서 뛰어 놀던 동네와 옛 모습은 지금 대형 고층아파트로
재개발되어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주요 고궁과 문화재 주변에도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건설돼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나 도시의 역사문화에 있어 모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제 이같은 도시를 문화와 역사의 정취가 넘쳐 흐르고 살 맛나는
도시로 변모시켜야 한다.

도시 곳곳에 문화시설을 확충하고,공원녹지를 가꾸어 아름답고 생태적인
도시로 바꿔야 한다.

장애인과 노인, 어린이를 고려한 보행환경을 만들어 사람중심의 도로체계로
변화시키고 도심공동화를 극복하여 야간에도 활기찬 도시로 가꿔야 하겠다.

또 도시의 명소를 개발하고, 장소적 특성이 반영된 지역개발과 주민이
참여하는 복합용도 재개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는 주요 재개발지에 대한 도시 나름의 특성과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보행자가 쉽게 접근할수 있는 건물저층부의 용도규정, 건축물의 층고,
밀도, 용적률 등이 규정되어야 한다.

둘째 한옥밀집지구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군에 대한 원칙과 보전대책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들어 서울의 가회동이나 원서동에 있는 한옥군에 대해 행정당국은
주민이 납득할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도심재개발에 있어서 공공성 유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사업성을 추구하다 보면 역사문화적 가치와 유적을 파괴하기 쉽고
주변환경에 피해를 줄수 있다.

따라서 도시의 상징성을 지키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사업은 지방 정부와
중앙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업성과 공공성의 조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21세기 도시로서 국제화에 대처하고 환경친화적이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가꾸기가 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도시개발은 경제적으로 더욱 높은 효율을
우리에게 돌려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이자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