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난데없이 지난 8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도" 조모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디선가 "요즘 졸부들을 보면 대도가 그립다"는 말이 나왔고 "글쎄말이야"
라는 맞장구 소리까지 들렸다.

당시 고위층의 집만 골라 저지른 대담한 범죄행위에 경악하던 여론의
화살이 대도가 훔친 값비싼 보석과 귀중품이 드러나면서 고위층의 장롱으로
향했던 기억도 되살렸다.

"우리가 어쩌다가 대도를 의적으로 미화하는 가치전도현상에 빠져 버렸나"

대화의 뒷맛은 씁쓸하기만 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일부 부유층이나 특권층이 고통분담의 대열에서 멀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자 서민들은 또한번 피해의식에 몸서리치고 있다.

IMF 구제금융이후 근로자 서민들은 전쟁터와 다름없는 고통속에 살고 있다.

근로자들이 상여금 1백~2백%를 반납하고 임금을 동결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샐러리맨들은 정리해고의 악몽에 밤잠을 설치고 직장에서는 날아들지
모르는 유탄에 맞지 않으려 기한번 못펴고 산다.

서민들은 이런 와중에서도 "달러모으기"로 한달여만에 10억달러를 만들어
냈다.

"금모으기" 행렬은 세계 금시세를 급락세로 이끌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금사재기에 혈안이 됐다는 소문이 나돌자 민심은
동요하고 있다.

"고위층의 장롱속에 금송아지 금돼지가 많다고 들었는데 한마리도 나오지
않았다"며 불신의 골을 파는 소리마저 들린다.

이 때문에 대기업 회장이 3백60돈이 넘는 금을 내놓았다는 등의 소식은
빛바래 버렸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문제도 그렇다.

금융기관 기업 정부 언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운사이징에 나섰는데
국회는 무풍지대다.

예산을 8조~10조나 삭감하겠다는 판국에 국회가 의원.비서를 줄이거나
세비를 삭감하겠다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김수섭 < 정치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