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죽음은 모든 생명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어서 철학과 종교의 기반이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로, 고대 로마에서 승리를 거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한 말이라고 한다.우리는 가능하면 죽음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존엄사가 사회의 화제가 된 적도 있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신청서에 서명하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 영화계의 새 흐름 ‘누벨바그’를 이끈 장뤼크 고다르 감독은 92세로 별세할 때, 앓고 있던 불치성 질환의 고통 때문에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택했다. 존엄하게 죽기를 원했기 때문이다.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는 말기 암 진단 후 시한부 인생이 돼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가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존엄하게 죽기를 소망했지만 가족과 소원해 친구에게 죽는 날까지 얼마 동안 옆방에서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스페인의 거장 알모도바르 감독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이 영화에서는 빨강과 녹색의 강렬한 색감과 도시 속 고독을 형상화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한 화면에서 나타나는 고독과 공감의 대비가 돋보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잉그리드(줄리앤 무어 분)는 신간 출판 사인회에서 옛 친구 마사(틸다 스윈턴 분)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사를 방문한다. 오랜만의 반가
돈도 사람도 기술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국인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이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었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의 40%에 해당한다. 인재도 탈출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고급 인력 취업 이민 비자인 EB-1·2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5684명이었다. 석사 이상의 고급 인재들이다. KAIST 1년 졸업생(2870명)의 두 배 규모다.사람도 돈도 떠나니 한국은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소외됐다. 급기야 케이뱅크 등 몇몇 기업은 국내 증시 상장을 포기했다. 야놀자, 토스 등 유망 기업은 미국 증시로 떠날 채비를 갖췄다. 증시 침체 결국 국민 부담한국 증시가 이렇게 된 이유는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는 배당에 인색한 걸 지적하고, 다른 이는 경영 투명성이 떨어지는 상장사가 많다고 탓한다. 이유가 어떻든 문제는 증시 침체가 장기화하면 그 부담은 우리 기업에 돌아온다는 것이다.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면 기업은 은행 대출에 매달려야 한다. 대출이 늘면 이자 부담이 커져 결국 재무 상태가 악화된다. 그렇게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다시 조달금리를 끌어올린다. 악순환 구조에 빠진다는 얘기다.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당수 기업이 정부 정책에 발맞춰 중간배당을 늘리고 배당 성향을 높이는 식으로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밸류업을 통해 주가가 올라도 투자자들이 떠나기는 마찬가지다. 이참에 보유 주식을 정리하고 수익률이 훨씬 높은 미국 증시로 떠나는 투자자가 한둘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현대자동차도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한 기업 중 하나다. 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정부효율부(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기업가 출신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를 임명했다. 목표는 정부 관료주의 혁파, 과도한 규제 철폐, 낭비성 지출 삭감 그리고 연방기관의 재건이다. 한국인 시각에선 부러우면서도 아쉬운 장면이다.어느 정도의 관료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과도하면 큰 문제가 되곤 한다. 현대 정부의 역사는 정치와 관료제의 힘겨루기로도 볼 수 있다. 한국은 정치의 완벽한 패배 상태다. 관료제가 정치에 끌려가는 외양만 있을 뿐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문제는 현대 국가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미국에서도 지난 수십 년간 이런 현상을 ‘워싱턴 늪’(Washington Swamp)이라고 부르며 경계해 왔다. 관료제를 정면으로 비판해온 트럼프의 득표율이 워싱턴DC에서 6.7%에 불과한 것을 보면 이 승부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다. 국가 존속을 위해 관료제 혁파는 필수불가결한 선제조건이 됐다.규제 철폐는 시장의 활력과 창의를 자극하고 시민의 자유를 확대한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역대 대통령도 이에 주목해 매번 규제 개혁을 국정의 중요한 원리로 제시했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작은 업적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상당히 눈에 띄는 규제 철폐를 시현했다. 지금도 규제를 신설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규제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 나라다. 그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로 우뚝 서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규제 철폐를 또 내걸다니. 부러울 따름이다.정부 지출 삭감은 또 다른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