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4대그룹 회장의 조찬회동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새정부의 대기업정책이 모습을 드러내자 재계가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총수의 책임강화를 주문한 부문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회동을 통해 나타난 김당선자의 대기업정책은 <>경영투명성 제고
<>재무구조개선 <>대기업과 총수의 책임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총수의 책임강화부분을 제외하면 그동안 조금씩 알려졌던 내용이 대부분
이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재무 및 경영구조 선진화를 요구하는 국제통화기금(IMF)
과의 합의사항 범위내에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최종현 SK회장이 이날 회동에서 "(김당선자가) 요구하신 것은 모두 IMF의
요구사항이기 때문에 1백% 동의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전체적으로는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총수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총수들이 이날 즉각 사장단회의를 소집하는 등 그룹 차원의 동참의지를
기꺼이 밝히기로 한 것도 합의내용에 별무리가 없다는 평가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김당선자가 이날 내놓은 요구에 총수들이 1백% 만족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합재무제표 작성의 조기도입과 총수의 책임강화 부분은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합재무제표 작성은 경영투명성제고의 필요성과 당위를 공감하는 회장들
로서도 여전히 불만이 있는 항목이다.

SK의 최회장이 회동에서 "외국은 연결재무제표를 요구하고 있고 새정부는
결합재무제표를 요구하고 있어 외국관행과 차이가 있다"며 "국제규격에
맞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합의 이후에도 실무적인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파악된다.

총수들의 책임과 관련해서도 회장들은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총수들이 자기자신의 재산을 주식투자를 위해 내놓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는 김당선자의 질문에 구본무 LG그룹회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면 종업원들이 흔들릴 수 있다"며 다소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계는 이렇게 부담스런 내용들을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설득
해야 하는 새정부측이 할 수 없이 내놓은 "고육책"으로 보고 있다.

부담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따르겠다는 방향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어쨌든 김당선자와 총수들의 회동을 통해 기업이 해야할 일의 가닥이 잡힌
만큼 그동안 움추리고 있던 재계는 활기를 띄고 움직일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의 순간이 사라지고 "이렇게 하면
된다"는 정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방향은 간단하다.

총수가 공개적으로 책임을 지는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해 빚을 빨리 갚고
중소기업과 손잡아 수출 및 경영정상화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재계의 합의문 "이행
각서"의 내용을 다듬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