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사.하이터치 공동기획 -

이면우 < 서울대 교수 >

우리주변에는 산업여건이 악화되거나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 예언가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낙관적으로 경기를 전망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것이다.

대개 이런 예언가들은 산업현장에 가본 적도, 수출일선에서 일해본 적도
없는 책상물림인 경우가 많다.

작년초 신문사에서 97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기술자가 보는 견해는 어떠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기고문에서 산업의 패러다임, 즉 우리가 산업구조의 틀을 바꾸지
않는한 우리산업은 상반기든 하반기든 상관하지 않고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로 구공탄집과 솜틀집의 예를 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산업은 마치
도시가스에 밀려 설자리를 빼앗긴 구공탄집, 캐시밀론 이불에 밀려 자취를
감춘 솜틀집의 운명에 비유될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구공탄집 솜틀집이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인가.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살아나는가.

솜틀집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회생되는가.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연탄을 배달하던 손수레는 LP가스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로 바뀌었다.

혼수감 장만을 위해 솜틀집을 방문하던 부모들은 캐시밀론 이불가게를
찾는다.

패러다임 변화의 구체적인 예는 우리기억에서 얼마든지 찾아낼수 있다.

여름철에 성업중이던 동네 얼음가게는 냉장고의 보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패러다임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신문지를 잘라서 봉투를 만들어 팔던 시절도 있었다.

밤새워 봉투를 만들면 새로 나온 비닐 봉지를 이길수 있는가.

우마차를 끌던 마부와 소가 일치단결하면 용달차를 당할수가 있는가.

우리주변에서 구공탄집 솜틀집 얼음집 부업주부 마부들까지 일찍이
경험하였던 패러다임의 변화를 왜 우리산업은 깨닫지 못하는가.

비슷한 시기에 미국학회에서 필자는 산업구조의 틀이 대전환을 이루고
있음을 마차경주와 폴로경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눈을 가리고 정해진 선을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하면
이길수 있었던 마차경주에 비유될수 있다.

그러나 정보혁명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의 산업구조는 마차경주가 아니다.

폴로경기인 것이다.

폴로경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마차경주에서는 눈을 가리고 달리기만 하면 되었으나 폴로경기에서는
눈을 크게 떠야할뿐 아니라 전후좌우를 쉴사이 없이 두리번거려야 한다.

마차경주에 임하는 기수는 말에 채찍만 가하면 경기에 이길수 있었으나
폴로경기에서는 끊임없이 방향전환을 하며 출발과 정지를 반복하여야 이길수
있다.

우리산업은 지난 60년대초반부터 양적성장을 지속해왔으나 산업구조의
틀을 발전시키는 일을 미루며 안주와 정체를 계속하였다.

저임금.양산조립과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는 달리기경주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필자가 산업현장에서 느꼈던 바에 의하면 75년부터 독자적인 연구개발
체제를 정착시키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중소기업을 육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에 치우친 육성정책으로 중소기업은 바람직한 성장을 하지
못하였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기술의존도는 심화되었고 기술 무임승차에 중독되면서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때쯤부터 내수시장은 단계적으로 개방하여 경쟁력 있는 산업구조로
바꿔나갔어야 했다.

이렇게 했으면 90년께부터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을 능가하는 강건한
산업구조를 이룰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국민소득 2만5천달러를 구가하였을 것이고 외화보유고는
2천억달러를 넘었을 것이다.

구공탄집 솜틀집을 걷어치웠어야 했는데 동장이 나서서 편을 들어 주었고
동회예산을 몰아주면서 구공탄집 솜틀집을 연명시켰다.

이제 철지난 산업구조로 제아무리 생산성을 높여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 없을 것이고 파장터에서 제아무리 목청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강조해도
회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온동네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공탄집 솜틀집을 꼭 살려내야만
하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구공탄을 팔아 큰 이익을 보아왔던 사람에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니 도시가스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면 쉽게 결정하겠는가.

평생 솜을 틀며 산사람에게 멀지않아 캐시밀론 이불시대가 온다고 하면
즉시 대책을 세울 것인가.

패러다임의 전환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어 있다.

왜 패러다임의 전환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

패러다임 전환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기존 산업구조를 포기하기가
수월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던 산업육성체제를 민간이 주도하는 정책으로 선뜻 바꾸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던 일을 놓기가 어디 쉬운가.

정부가 모든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발상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누어 주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지원을 중지하면 문전성시를 이루던 발길도 끊길 것이다.

내수시장 보호막을 거두고 국제시장경쟁체제로 선회하는 일도 결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망하는 기업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기업도 힘들 것이다.

가격경쟁력보다 더 손쉬운 시장경쟁이 있겠는가.

기술도입보다 더 빠른 상품개발이 있겠는가.

내수시장도 좀더 준비한 후에 개방해야 되지 않겠는가.

투명경영에 신경쓰다 보면 결단의 효율과 사업추진의 가속도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국민들도 난감할 것이다.

정부도 개혁하고 기업도 혁신해야 되지만 내 직장만은 보장해줘야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모르고 지내다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책임은 아니지 않는가.

나도 고쳐야 할 점은 있지만 어디 나 혼자만 잘못한 일인가.

이 모든 난관을 뚫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결정하였더라도 이의 실행이
어려울 것이다.

마차경주와 폴로경기의 예를 들어보자.

눈을 가린채 일직선만을 뛰던 말에 갑자기 눈가리개를 풀고 좌우로 앞뒤로
공을 쫓아다니라고 하면 할수 있겠는가.

마차경주 기수에게 순간적인 출발과 급격한 방향전환이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하면 잘할수 있겠는가.

패러다임 전환은 어떤 전략으로 추진되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패러다임 전환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으킨 사업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끊임없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반복하여야 한다.

한때 세계시장을 풍미하던 가발과 목재, 면방과 봉제, 신발과 자전거도
변화하는 시장여건및 발전하는 소비자 취향과 제조원가 상승을 무시하고
과거의 틀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전환에 실패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일류기업들이 경영혁신 과정에서 기존체제를 철저히 부정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였던 것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심취하다 보니 화전민 마을의 잡화상이 되었고
모방에 심취하다보니 단봉낙타가 되었다.

필자가 가격경쟁력이 헛된 구호임을 강조하였던 것도 원점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오늘날의 여건을 실사하자는 뜻에서였다.

이에 정부 기업 국민이 구상해야 할 패러다임 대전환(Great Shift)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돼야 하겠는가.

우리의 대책은 세가지 개념 축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첫번째 축은 첨단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 혁명의 전개에서 대전환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정보혁명은 현존하는 모든 산업분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농업혁명이 완결되고 산업혁명으로 전이하면서 도로와 교통과 도시의
기능이 발전하였다.

이제 정보혁명시대를 맞아 물류의 흐름과 함께 정보의 도로, 지식의 교통
수단, 지혜의 도시 개념이 생성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단축되며 과거의 희망사항이 미래의 현실로 연결되고
현존산업과 신규산업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

사람의 업무가 조정되고 활동내용과 대상이 변화되며 생활 양식과 소비자
취향이 바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구공탄집 솜틀집 얼음집 주인이 도시가스와
캐시밀론 이불과 냉장고의 출현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와같은 정보혁명시대는 약5배의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주인 없는 사업분야의 진출기회가 5배 늘어난 것이다.

두번째로 국제화 시대의 특성을 전환의 축으로 삼아야 한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는 한정된 인구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내수시장을
포기했고 국제화에 주력할 수 박에 없었다.

아시아 경제발전의 한계를 예언한 미국의 학자는 인구가 2억명만 되면
국제화에 소홀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우리도 수출에 전력하기는 하였으나 내수시장에의 애착을 끊지 못하였던
것이다.

국제화 시대는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모방하면서 모든 것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한 부분만을 창조해도 국제화를 도모하면 세계 일류가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번재 축은 국가발전의 새로운 개념 정립에서 찾아야 한다.

국가의 비전이 위기극복을 목표로 해서는 곤란하다.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발전을 다짐하는 도약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말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저간의 책임을
규명하려 하지 말고 오직 도전과 발전과 미래의 기회만을 생각해야 한다.

규정과 관습을 일소하고 창의와 도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보혁명의 시대적 전기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고 국제화 시대에서
밖으로 향하는 전기를 맞으며, 경제지표와 통계숫자에 얽매이던 국가발전
방향을 새로운 비전으로 무장해야 한다.

희망적인 징조도 보인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모임(New Paradigm Club)이
자연스럽게 결성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전환을 주도하려는 기업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구공탄집과 솜틀집이 고집을 꺾기 시작한 것이다.

구공탄집과 솜틀집은 고목나무이다.

세가지 축을 염두에 두며 고목나무의 소생방안에 지혜를 모을 때이다.

< 패러다임의 전환 >

과거 패러다임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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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 마차경주 폴로경기

경기장 : 단선주로 넓은 경기장

시야 : 전반 고정 전후방 넓은 시야

경기력 : 노력 생산성 가격경쟁력 전략 팀웍 창의력 가격결정권
향상요인 추진력 대처능력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