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신세가 됐으나 말레이시아만이 IMF에 손을 벌릴 의사나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IMF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만한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말레이시아가 다른 나라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투자의 상당부분을
저렴한 해외차입금으로 조달, 당장 상환해야 할 외채액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정치적인 안정이다.

마하티르 총리가 조지 소로스와 극한대결의 양상을 보여 국제금융가의
신뢰를 잃을 때는 2인자가 나서서 이를 무마시키는 통치권력의 짜임새를
보였다.

2인자인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겸 재무장관은 마하티르의 강성을 누그러
뜨리는데 주력했으며 작년말에는 긴축적인 예산운용 등 자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예산을 21% 감축하고 성장률은 4.5%로 축소했다.

마하티르 총리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국가적 비젼사업인 바쿤 댐 건설
계획(약 30억달러)과 멀티미디어슈퍼코리더(약 1백8억달러)같은 대형 국책
사업도 무기한 연기시켰다.

여기에 IMF까지도 말레이시아를 좋게 평가하고 있다.

IMF는 "말레이시아의 은행관련규정들이 이웃나라들보다 훨씬 잘 정비돼
있다"며 안심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정부는 한술 더 떠서 "부실은행들은 강제로 문을 닫게 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건실한 대형은행으로 만들겠다"며 외국투자자를 안심시키는
작업에 소홀함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IMF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처럼 큰 폭의 통화가치 및 주가하락을
보이고 있지만 회복속도는 더 빠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들이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