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열리는 외채 협상을 앞두고 해외 금융기관들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 금융계를 양분하고 있는 투자은행계와 상업은행계의 대립구조가
뚜렸한 가운데 우리정부는 상업은행계인 씨티은행을 주된 파트너로 선택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다행히 이같은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19일에는 유럽계 은행들이
종전보다 크게 낮은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등 협상은 유리한 국면으로
조성되고 있다.

유럽은행들이 새로 제시한 리보+2%선의 금리는 그동안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제시한 리보+10%와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 우리로서는 "복음"과도 같은
조건이라고 할수 있다.

유럽은행들이 이같이 종전과는 다른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은 무디스
등 미국계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결과를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용평가에 대한 유럽 은행들의 증폭되어 있는
불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한국의 외채 연장문제를 둘러싸고 국제금융계의 큰 싸움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고 우리로서는 이런 국제금융계의 대립양상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내야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그러나 JP모건을 축으로 하고있는 투자은행계열 금융기관들은 미 재무부의
고위 인사들이 직접적인 지원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등 세력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머스 미국 재무부부장관은 김당선자를
만나서까지 JP모건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거듭하는 등 집요한 공세를 펴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외채를 전액 혹은 일부라도 고이율의 국채로 전환하도록
요구하는 등 증권투자기관출신으로서의 본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JP모건이 요구하는 조건이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판단,
최근들어서는 투자은행이 아닌 상업은행쪽으로 협상라인을 바꾸었고 특히
씨티은행을 파트너로 끌어들여 협상의 전면에 투입하는데 일단 성공하고
있다.

재경원은 특히 이 과정에서 씨티은행의 존 리드 회장과 임창열 부총리가
수시로 전화 접촉을 갖고 유럽과 일본계 금융기관들을 우호세력을 끌어
들이는데 공동전선을 펴 왔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일본과 유럽은행들의 외채연장에는
씨티은행의 공헌이 지대하다고 밝히고 상업은행들의 외채가 많은 만큼
뉴욕협상은 상업은행을 중심으로 해가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원이 올들어 상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협상라인을 다시 구축
하면서 재경원과 임부총리에 대한 국내외의 흔들기 작전조짐이 엿보이는 등
반발도 만만찮게 진행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 투자기관들은 공공연히 한국의 특정인사를 협상대표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외에도 임부총리가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한미간
자동차 협상등을 거론하며 미국과의 협상에는 임부총리가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분석을 흘리는 등 양동작전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에 밝은 전문가들은 협상이 본격화될수록 우리측에 대한 흔들기
전략도 더욱 치열해질 것인 만큼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외국은행들이 우리내부를 파고들어 협상단을 각개격파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