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폭등에 따른 IMF한파가 국내 PC업계를 고사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환율파동은 먼저 PC부품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보드업체인 삼우들이 지난해말 부도처리된 데 이어 대만
에이서스텍사의 메인보드를 수입 공급해온 선린전자도 지난 8일 좌초하는
등 중견 부품업체의 부도가 잇따르고 있다.

또 환율상승에 따른 부품 가격인상은 조립PC와 완제품 PC의 가격을
밀어올려 내수불황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립PC업계는 CPU(중앙처리장치)등 주요 부품가격이 30~40% 급등함에
따라 가격경쟁력을 잃고 고객들이 요구하는 가격과 사양을 맞추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다.

또 대기업 PC메이커들도 원가상승 부담을 견뎌내지 못하고 올초
완제품PC 가격을 줄줄이 인상했다.

이는 컴퓨터 핵심부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온 국내 PC산업의 열악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PC생산국이란 명망이 무색할 정도로 단순
조립생산에 열중해왔다.

특히 부품과 주변기기의 핵심칩세트는 예외없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CPU는 전량 수입하고 있으며 10만원짜리 VGA카드와 사운드카드를
구입할 경우 각각 8만5천원과 6만원 가량을 고스란히 외국업체의 손에
넘긴다.

국내 대기업이 내놓은 하드디스크와 CD롬 드라이브도 헤드와 픽업등
핵심부품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는 핵심기술투자를 게을리하고 조립생산에만
몰두해온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핵심기술 없이 모래성을 쌓아온 업계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계 메인보드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 각 중소기업이
전문화된 분야에 집중, 독보적인 기술로 경쟁력을 쌓았다.

또 컴퓨터 협동조합이 군소 전문업체가 만들어낸 핵심부품을 대량구매,
중견업체의 완제품 생산에 투여하는 방식으로 산업의 조화로운 성장기반을
닦아왔다.

업계에는 요즘같은 고환율상태가 지속되면 국내 PC산업이 몰락하고 만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또 이번 위기를 간신히 넘기더라도 결국엔 경쟁력을 잃고 시장을 대만등
해외업체에 고스란히 넘겨주고 말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각 업체가 장기적 안목에서 전문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집중, 핵심기술에 대한 경쟁력을 높여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게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유병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