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세계경영'서 난세극복 지혜를..소설 '칭기즈칸 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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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는 영웅담이 잘 읽힌다.
근래 TV시리즈뿐만 아니라 매스컴마다 "몽골리안 특집기획"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때문.
역사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대만출신 일본작가 진순신(74)의 대하장편
"칭기즈칸 일족"(서석연역 전4권 한국경제신문사)은 위대한 정복자의
"세계경영"정신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때로는 쫓기고 굴욕을 참아내며 세계정복을 이룩한 칭기즈칸과 그
후손들의 흥망사에서 오늘의 난국을 헤쳐갈 지혜를 배울수 있다.
이 작품에는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이 이룬 위업,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한 원나라의 흥망성쇠 등 세계사의 굵은 줄기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초원의 작은 마을을 다스리던 애송이가 무적의 기마군단을 끌고 중국과
유럽대륙을 평정할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십자군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동방에서는 크고 작은 부족들이
통합되고 있었다.
15살의 마리아가 콘스탄티노플에 도작한 이듬해인 1189년, 21개 씨족
대표들이 테무친을 칸으로 추대했다.
28세까지 그는 이름 그대로 테무친이었다.
적에게는 강하고 자기편에는 상냥한 청년지도자.
그가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대중적인 인기때문.
남을 쉽게 포용하는 힘이 테무친의 가장 큰 힘이었다.
당시 칸은 그다지 빛나는 자리가 아니었다.
노인들이 마지 못해 맡는 이 자리를 그는 최고권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유목민들은 상인을 소중히 여겼는데 그도 상인들로부터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강하게 되면 세계는 넓어진다"는 진리를 여기서 터득한 것이다.
그가 누린 영광의 뒷켠에는 스스로 세상을 넓힌 지혜와 용기가 있었고
최대 강국의 신화도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마리아와 함께 세상을 뒤흔들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그도
결국 자연의 섭리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가 죽자 대칸을 향한 제국의 권력쟁탈전으로 초원은 붉게 물들고
뒤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몬케는 아우 쿠빌라이의 모반을 경계하며
쿠빌라이의 측근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하지만 천하의 대세는 서서히 쿠빌라이에게 기울고 몬케가 전장에서
갑자기 목숨을 잃자 형제들의 암투는 극에 달한다.
마침내 대륙 동쪽의 세력을 모은 쿠빌라이가 정식으로 대칸을 승계하고
국호를 대원으로 정한 뒤 광활한 영토에 어울리는 국가체제를 구축하려
하지만 한족의 문화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는 비판과 함께 점령지의
수장들이 속속 반기를 든다.
아무리 강대한 국가도 자중지란 앞에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중원을 평정하고 일본 정벌을 꾀하던 쿠빌라이는 거듭되는 원정실패와
모반세력의 발호로 점차 쇠락하고 만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과정은 "스스로 뿌리를
지탱할 힘이 없는 민족에게는 신의 도움마저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1일자).
근래 TV시리즈뿐만 아니라 매스컴마다 "몽골리안 특집기획"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때문.
역사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대만출신 일본작가 진순신(74)의 대하장편
"칭기즈칸 일족"(서석연역 전4권 한국경제신문사)은 위대한 정복자의
"세계경영"정신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때로는 쫓기고 굴욕을 참아내며 세계정복을 이룩한 칭기즈칸과 그
후손들의 흥망사에서 오늘의 난국을 헤쳐갈 지혜를 배울수 있다.
이 작품에는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이 이룬 위업,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한 원나라의 흥망성쇠 등 세계사의 굵은 줄기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초원의 작은 마을을 다스리던 애송이가 무적의 기마군단을 끌고 중국과
유럽대륙을 평정할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십자군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동방에서는 크고 작은 부족들이
통합되고 있었다.
15살의 마리아가 콘스탄티노플에 도작한 이듬해인 1189년, 21개 씨족
대표들이 테무친을 칸으로 추대했다.
28세까지 그는 이름 그대로 테무친이었다.
적에게는 강하고 자기편에는 상냥한 청년지도자.
그가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대중적인 인기때문.
남을 쉽게 포용하는 힘이 테무친의 가장 큰 힘이었다.
당시 칸은 그다지 빛나는 자리가 아니었다.
노인들이 마지 못해 맡는 이 자리를 그는 최고권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유목민들은 상인을 소중히 여겼는데 그도 상인들로부터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강하게 되면 세계는 넓어진다"는 진리를 여기서 터득한 것이다.
그가 누린 영광의 뒷켠에는 스스로 세상을 넓힌 지혜와 용기가 있었고
최대 강국의 신화도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마리아와 함께 세상을 뒤흔들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그도
결국 자연의 섭리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가 죽자 대칸을 향한 제국의 권력쟁탈전으로 초원은 붉게 물들고
뒤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몬케는 아우 쿠빌라이의 모반을 경계하며
쿠빌라이의 측근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하지만 천하의 대세는 서서히 쿠빌라이에게 기울고 몬케가 전장에서
갑자기 목숨을 잃자 형제들의 암투는 극에 달한다.
마침내 대륙 동쪽의 세력을 모은 쿠빌라이가 정식으로 대칸을 승계하고
국호를 대원으로 정한 뒤 광활한 영토에 어울리는 국가체제를 구축하려
하지만 한족의 문화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는 비판과 함께 점령지의
수장들이 속속 반기를 든다.
아무리 강대한 국가도 자중지란 앞에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중원을 평정하고 일본 정벌을 꾀하던 쿠빌라이는 거듭되는 원정실패와
모반세력의 발호로 점차 쇠락하고 만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과정은 "스스로 뿌리를
지탱할 힘이 없는 민족에게는 신의 도움마저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