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위기에 대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전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식 완전개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개도국뿐 아니라 미국내에서도 동조자가 늘어가는 이 주장의 핵심은
개방으로 더욱 활개를 칠 국제단기투기자본(핫머니)를 규제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위기의 근본원인이 아시아적 경제발전 모델보다는 "핫머니"와
아시아국가의 "정치적 리더십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이같은 주장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

핫머니 규제책은 현재 진행중인 국제금융제도 개혁 논의와 맞물려 앞으로
선진국과 개도국간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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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에서 신흥시장(이머징마켓)혼란 방지를 위해선 칠레처럼 핫머니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학계 금융계는 물론 세계은행 당국자도 지지를 표시하고 있는 이 주장은
현재의 아시아 위기는 아시아 금융시장에 해외로부터 핫머니가 흘러들어가
버블을 발생시켰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자산가치의 과대평가를 초래했던 핫머니가 어느순간 한꺼번에 빠져나감으로
써 아시아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아시아위기는 리더십의 결여에서 비롯됐다는 입장과 더불어
금융시장의 개방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 논리와는
상충되는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핫머니 규제의 목소리를 높이는 선두주자는 아시아 한계론으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다.

그는 "핫머니가 대량으로 유입될 경우 신흥국 정부가 적절히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단기자금의 유입억제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시장이 비효율적이고 축적된 금융자산이 적은 신흥국가로선 핫머니
유입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격 버블을 유발하지만 그나라 정부가
부작용을 막기위해 긴축 정책을 취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또 골드먼 삭스증권의 호마츠 부회장은 "금융시장의 감시감독 강화만으로
핫머니의 급격한 유입에 의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견해를
표시했다.

세계은행 J 스티글리츠 부총재도 최근 뉴욕타임스지 기고를 통해
"안정적인 장기투자를 촉진하는 동시에 단기자금의 유입을 억제하는 정책이
개도국에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같은 정책의 모범국가로 칠레를 들고 있다.

칠레는 해외로부터의 단기 주식투자나 융자에 대해 일정비율(30%)을
중앙은행에 일정기간(1년) 무이자로 예탁하는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급격한
투기성 자금의 유출입을 방지하고 있다.

시장중시 경제구조 개혁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모범국가이지만 핫머니가
경제를 왜곡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어느정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칠레정부의 판단이다.

또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와 카르도소 브라질대통령도 "단기투기를
일삼는 헤지펀드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대해 이코노미스트인 H 카우프만은 "중장기적으로 효율성을 떨어뜨리며
시장경시 경향이 있는 아시아에는 맞지 않는다"며 "핫머니 규제는 선진국의
문제이지 개도국의 문제는 아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편 아시아위기는 낡은 정치체제와 민주적 통제의 결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대통령가의 부패와 수하르토 체제이후에 대한
불안감이, 한국에선 김영삼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시기를 놓침으로써
위기가 증폭됐다는 것이다.

또 오는 5월 라모스 대통령의 임기만료를 앞둔 필리핀, 하시모토 총리
지지율이 급락한 일본, 차왈릿 전정권의 퇴진까지 낳은 태국 등도 정치적
불안정이 금융통화시장의 불안정으로 연결돼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화교권국가의 경우 아시아위기에서
비교적 벗어나있는 것은 안정된 정치와 강한 리더십 때문이란 지적이다.

<강현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