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대표단은 뉴욕에서 단기채무를 장기채무로 전환하는 차환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의 주된 쟁점은 두가지이다.

첫째 현재 우리의 신용도가 정크본드 수준으로 낮아져 있어 6백bp 정도의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받고 있는데 차환이 시급하기 때문에 부담의 대소를
불문하고 서둘러 계약을 체결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1년여전 50bp 정도의 프리미엄을 내면 되었던 우리의 신용도를 상기하면
현재의 신용도하락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볼수 있다.

때문에 현재 일순간의 신용평가에 대응하는 이런 높은 수준의 이자율로
장기계약을 체결하면 차후 긴 계약기간동안 5백50bp 만큼을 추가 부담해야
된다.

이는 부당하다고 할수 있다.

둘째 차환협상중 채권자의 일부가 우리정부에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하는 것이 과거에 있었던 외채협상의
전례에 비추어 보아 타당하냐 하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조기상환을 할수 있는 옵션을 부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다는 가변 프리미엄을 계약내용에서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후자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중지를 모아야 하겠다.

서둘러 협상을 종결지어야 한다는 중압감때문에 가벼이 보증하고
결과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지는 일은 피해야 하겠다.

채권자들이 채무자들로부터 높은 이자를 받는 것 이상으로 기왕의
민간부채에 대해 당사국의 보증을 요구하여 성공했던 선례로서 80년대
칠레의 예가 있다.

이때 이 나라는 군사독재하에 있었다.

이런 약점을 이용해 채권은행은 지불보증을 얻어낼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사적 채무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private debts)"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채권자의 분별없는 대여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아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염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시장경제원리를 훨씬 더 강조하고 있는 때이다.

현 시점에서 지불보증을 강요한다는 것은 80년대의 그것보다 더욱
더 부당하다고 할수 있다.

사인인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처리방법과 주권을 가진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처리방법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자는 비교적 완벽한 사법제도하에서 잘 규정된 파산절차를 따르게
되어 있으나 후자는 그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주권을 가진 채무자에 대해서는 공식적 파산이 있을수 없다.

기껏해야 경제봉쇄등 사실상의 파산상황이 있을수 있을 뿐이다.

채무불이행후 시현될 절차에 대해 고려해보면,먼저 이러한 사태발생에
대해 채권자와 채무자중 누구의 과실이 더큰지를 점검해보는 과정이 있고
다음엔 이로써 발생된 손실을 양자사이에서 분담하는 사실상의 협상이 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참고할수 있는 것이 영국의 오랜 관행이라고
케인스가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문제된 채권의 규모가 작다면 채무불이행은 채무자의 책임이
되나, 문제된 채권의 규모가 매우 크다면 채권자가 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채무는 결코 작다고 할수 없다.

또 현재의 어려움을 맞게된 원인이 우리의 잘못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적인 원인에 기인하는 면도 없지 않다.

때문에 80년대 외채위기 대처시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채권자와 채무자의
손실부담이 분명히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아시아 채무자와 관련해서는 IMF의 긴축요구를
채무자가 지키는 것만이 강조될뿐 채권자의 책임은 논외로 되고 있다.

단기채무를 장기채무로 차환하는 과정중에 본래 사적인 채무를 정부로
하여금 보증하라고 요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도 추가되어 나타나고
있다.

채무자에게 고이자율과 지불보증을 강요하는 것의 당부는 본원적으로
국제경제학의 "이전문제(transfer problem) "에 대한 논의에 의거해
판정될수 있다.

패전국인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서 승전국은 독일로 하여금
배상금을 벌수 있게 해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로 하여금 일을 많이해 소득과 고용을 늘리고 수출을
많이 할수 있도록 해 주어야 했다.

오늘날의 채권국도 고이자율로 과다책정된 이자를 징수하려면 마찬가지로
채무국에 보다 많은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 이면에서 자신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증을 요구해 채무국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이전받으려 한다면 그러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채권국통화가 더 평가상승하게 되고 고용은 더 줄어들게
되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

최근 달러화의 강세로 미국의 금융 정보통신 도소매부문은 유리해졌으나
자동차 기계 철강부문은 불리해졌다.

이자를 더받고 보증을 강요할 경우 이러한 미국내 산업간 이해관계변화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런 변화및 그 속의 대립이 바람직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미국의
몫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