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특약 독점전재 ]

자본시장 개방은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북돋우는 지름길이라는 이론은
최근의 아시아금융위기로 인해 더이상 설득력을 얻기 어렵게 됐다.

물론 아시아국가들은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에서 많은 경우 10%에 이르는 막대한 해외자본의 유입으로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이룩할수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시아지역의 경우 앨런 그린스펀 FRB(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이
밝힌대로 "해외자본이 위험을 방지할수 없을 정도로 쏟어져 들어와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은 이론적인 모델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게 현실이다.

낙관론이 우세하면 자본이 갑자기 몰렸다가 비관적으로 돌아서면 일시에
빠져 나오는 상황에서 흔히 지적하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요즘 이코노미스트들사이에서는 어떻게 하면 금융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자본시장 개방의 효과를 만끽할수 있는가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첫번째 대안은 해외자본거래에 대해 소규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제안해 "토빈세"라고 불린다.

이 방안은 장기자본흐름에는 거의 영향이 없는 대신 단기자본유입시에는
코스트를 높임으로써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해외자본 이탈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자국통화를 매각함으로써 위기를 야기시켰던 아시아지역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별로 없다.

단기차입을 규제하는 방안은 많은 경제학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해결책이다.

지난 82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칠레가 취한 규제안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칠레는 예컨대 국내기업이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차입할 경우 총차입금의
30%를 1년간 무이자로 중앙은행이 예치하는 규제책을 실시했다.

그 덕택에 칠레는 이머징마켓보다는 높지 않지만 10년동안 지속적이면서
꾸준한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일부 칠레학자들은 칠레기업들의 단기해외차입규모가 줄었지만
다른 경로로 단기차입금이 늘어났기 때문에 실제로 단기차입금의 총규모는
결코 감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단기차입금을 규제하자는 방안은 이론적으로 바람직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자본규제는 효과를 보기 극히 어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사태를 계기로 금융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네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해외자본의 개방이전에 금융시스템을 전면
자유화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아시아국가들은 이 점을 소홀히 했다.

돈을 빌리는 기업과 빌려주는 은행간에 밀월관계가 존재하고 대출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상황에서는 건전한 금융시스템이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금융시스템을 자유화하더라도 정부는 은행들을 엄격히 규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본흐름이 갑자기 변화하거나 금리가 이상급등하는 등 이탈조짐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셋째 환율정책을 탄력적(flexibility)으로 운용해야 한다.

고정환율제하에서는 중앙은행이 경기과열을 막기위한 금리인상조치와 같은
정책수단을 실시할수 없게 만든다.

자유변동제의 문제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시아통화들의 동반폭락사태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시장은 믿을만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방은행들이 예컨대 한국금융기관들의 대출규모나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순식간에 대출금 상환을 요구할게
뻔한 것이다.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 정리=이성구 런던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