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엔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었다.

대학시절엔 온타리오 호숫가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던 자유분방한
이상가였다.

대학졸업후 거의 맨주먹으로 사업에 뛰어든지 19년, 연간매출 1억캐나다
달러(약 1천2백억원)의 중견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에서 나무에 승부를 걸고 있는 청년실업인
김영일(45)씨의 간단한 프로필이다.

김사장이 평생을 걸고 일궈낸 트랜스팩(Transpac)사는 원목수출 산판개발
원목 및 제재목생산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트랜스팩의 원목수출량은 연간 50만~60만평방m로 최근 몇년동안 캐나다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최대수출시장은 한국이다.

한국이 북미지역으로부터 수입하는 원목의 37~38%가 트랜스팩을 통해
이뤄진다.

소량이지만 일본에도 수출하고 있다.

돈으로 따지면 연간 약 7천만캐나다달러어치를 수출한다.

산판개발과 원목생산도 중요한 사업분야다.

나무가 잘 자란 산판을 사들여 벌목한후 빈 땅은 주택지나 농장지로
개발해 판다.

현재 BC주 8개 지역에 약 3만에이커의 산판을 보유하고 있다.

근 3천7백만평 규모다.

이 자체소유 산판에서 생산되는 원목은 연간 20만~25만입방m에 달한다.

제재목 생산은 고급주택이나 고급가구용 나무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는 하청공장을 이용, 소규모를 생산하고 있지만 앞으로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김사장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고등학교는 홍콩에서 나왔고 대학은 토론토에서 다녔다.

육사5기인 아버지가 군복을 벗고 사업에 투신하면서 해외를 이곳저곳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77년 독일과 프랑스의 합작회사에 취직해 중동지역에 자주
출장을 갔다.

한국 건설업체와 인연을 맺은 것이 바로 이 시기다.

78년 퇴직한 그는 5만캐나다달러로 토론토에서 캔팩이란 회사를 차려
중동의 한국 건설업체들에 건자재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동 건설붐이 시들자 83년 회사이름을 트랜스팩으로 바꾸면서 원목쪽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사업거점도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옮겼다.

트랜스팩의 한국 고객들은 절반 가까이가 종합상사들이고 나머지는
중소기업들이다.

한국의 원화가치 폭락으로 한국기업들이 원목 수입을 줄임에따라 제재목
분야에 집중해 캐나다 내수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볼 생각이다.

트랜스팩엔 한국인 5명과 현지인 9명 등 모두 14명이 일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주로 사무직이고 원목생산 산판매입 등 실무적인 일들은
현지인이 맡는다.

지난해 1억캐나다달러의 매출중 순이익은 3백만~4백만달러에 달했다.

김사장은 기업은 사회의 공기라는 생각아래 이윤중 일부는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현지 아동병원에 매년 1만5천~2만캐나다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밴쿠버지역 한인2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관련 교육을 위해서도
해마다 5천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2년전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한국관 건립에 2만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크고 작은 기부까지 모두 합하면 기부금 총액은 연간 10만캐나다달러에
육박한다.

"미국 CNN방송의 창립자 테드 터너를 좋아합니다.

젊은시절 자유분방했고 사업에선 용기와 패기로 일관했죠.

얼마전엔 10억달러의 기부금을 흔쾌히 내놓았습니다.

진정 존경받는 기업인이 된거죠"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그는 터너 회장의 이야기로 대신했다.

< 밴쿠버=정평국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