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가 도입되면서부터 매년 1월이면 가져오던 행사다.
계약식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연봉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팀장과 지난 일년간의
근무성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정도다.
L과장의 성적은 C급으로 평균.
다소 아쉬움은 남지만 인사팀에서 꼼꼼하게 작성한 고과표를 증거로
내미니 항의할 수도 없다.
누가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K차장의 연봉은 C부장보다 많다더라" "P과장은 입사동기들보다
5백만원이나 더 받는다더라"는 식의 소문을 자주 듣던 L과장은 "앞으로는
연봉을 대폭 올려받도록 분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연봉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연봉제의 핵심은 "기여도가 높은 사람이 보수도 많이 받는다"는 철저한
실적.능력주의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93년 국내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도입배경 =90년대 초반 두산은 이른바 "대기업병"을 앓고 있었다.
맥주 음료 등 주력사업에서 오랫동안 독점적인 위치에 놓이자 조직은
비대해지고 구성원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폐해는 당장 맥주사업에서 현실화됐다.
경쟁사인 조선맥주가 추격해오는데도 효과적인 대응을 못해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모기업인 OB맥주는 적자로 돌아섰다.
그결과 박용곤 당시 그룹 회장은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1백년
경영이념이던 "인화"를 내던지고 연봉제를 도입하는 용단을 내렸다.
<>프로세스 =그룹 인사팀은 연봉제의 도입에 앞서 사내설문조사를 실시,
직원들이 연봉제에 대해 <>실질임금이 깎이거나 <>공정한 평가가 힘들
것이란 두가지 불안감을 가진 것을 알아냈다.
인사팀은 이에 따라 연봉제는 한쪽의 월급을 깎아 다른쪽에 주는
제로섬이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에겐 보수를 많이 주겠다는 것임을 명확히
했다.
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고과기준을 마련하는데 전력했다.
그결과 두산은 93년부터 직원의 고과를 A부터 E까지 다섯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임금을 차별지급하는 연봉제를 실시할 수 있었다.
두산은 95년 등급간의 격차를 넓히고 개인외에 부서별 점수를 평가기준에
반영하는 등 연봉제를 전면 개편했다.
지난 2년간의 실시로 직원들의 경쟁마인드가 자리잡았다고 판단, 경쟁
(개별평가)과 협동(부서평가)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묘안을 내놓은 것이다.
오리콤(광고업) 두산정보통신 두산인재기술원 등 3개 법인은 업무특성상
평사원에게까지 연봉제를 확산시켰다.
<>개선방향 =두산은 최근 인사관리전문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지난 4년간의
성과를 재점검했다.
그결과 개인이기주의가 확산되고 업무처리결과에 책임을 회피하는 등
부정적인 요소가 고개들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산은 따라서 파격적으로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슈퍼등급의 비중을
강화해 개개인의 도전정신을 북돋우는 한편 팀워크점수에 대한 비중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이를 보완해갈 계획이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