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3시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소재 양지원공구 공장사무실에
서이석 경기은행장이 나타났다.

중소기업인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직접 듣고 신속하게 해결해주기
위해서였다.

세평 남짓한 사장실에서 서행장은 녹차를 한잔 대접 받으며 송호근
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 어려움이 많으시겠지요.

"DA(수출환어음), DP매입이 거의 안돼 요즘은 바이어가 현금을 보내주는
와이어트랜스폼 결제로 버티고 있지만 이 방식도 바이어의 신뢰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많아요.

이런 상황이 4주이상 지속되면 산업과 금융 모두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10억원정도 어음할인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습니다. 즉시 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애로는 없습니까.

"우리가 만드는 엔드밀은 세계 1위라고 자부합니다.

생산량의 80% 가까이 수출하는데 올해 3천만달러가 예상됩니다.

지난해말부터 하루도 쉬지않고 공장을 돌릴 정돕니다.

다행히 최근 신용보증기관에서 DA,DP를 포함해 3백만달러를 보증해
주기로 했어요.

대출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내용이라면 가능합니다.

또 수입결제자금 대출은 우리은행에서 취급할수 있는 LC at sight
(일람불환어음)로 돌려주시면 제때 자금을 집행하겠습니다.

불과 30분 정도의 대화로 중소기업의 어음할인 및 대출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서행장은 그길로 근처에 있는 현대페인트도 방문, 정병기 회장의 말을
경청했다.

시급한 30만달러의 수입결제자금 지원요청을 받은 서행장은 간편한
유전스(외상수입) 대출이 가능할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기업을 돌며 애로를 듣고 지원여부를 현장에서 결정하는 서행장의
나들이는 이 지역 중소기업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들에 대한
대출마저도 기피하는 살벌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기업들에는 지존격인 행장이 몸소 생산현장을 찾고 있으니 일대
파격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강순선 경기은행 자금부장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전략의 일환"이라며"이제는 금융기관이 기업을 찾아나서야 할때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게 바로 금융기관의 지역밀착, 고객밀착 경영이다.

그래야만 거대한 자본과 노하우로 무장한 외국 금융기관들과의 경쟁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행장과 면담을 끝낸 중소기업사장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 인천 = 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