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파로 곳곳에 조직 감축과 경비 삭감의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자만으로 부풀린 군살을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는 아픔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갈 량의 지모는 퇴각시 돋보이는 법.

놀라고 당황한 마음에 미래의 희망마저 잘라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근래 기업의 감량경영 실시과정에서 기술개발과 지적재산권 관련 인원과
비용을 30~40%씩이나 삭감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본다.

경제위기의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이란 관점에서 잘못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제 위기의 진단과 처방을 생각해 본다.

오늘날 우리 경제위기의 직접 원인은 구조 조정 지연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력의 약화"와 사회 전반에 걸친 "중복 과잉 투자로 낭비의 만연화"가
초래된데 있다.

물론 외환금융란이란 형태로 위기가 표출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물의 그림자가 결과로 나타난 것일 뿐 문제는 실물에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 위기의 간접 원인은 경제 엘리트들의 철학 빈곤으로 인한
예지력 약화와 WTO로 표출되는 신세계 경제 질서와 작금의 변화된 한국경제에
적용될 적정 규범의 설정에 부패한 때문으로 보인다.

진단에 입각한 처방을 생각해 본다.

위기 경제의 해결 전략은 궁극적으로 경제 엘리트들의 사고에서 나오는
만큼 그들은 무서운 책임감으로 재무장하고 주관과 자세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

자만과 남의 논리모방, 무책으로는 이미 엘리트가 아니다.

WTO등 신세계 경제 질서는 싫든 좋든빠르게 국내에 수용 소화시켜야 하며
국내 질서 변화를 선도하는 신규범이 민주적 방식으로 시급히 설정되어야
한다.

신규범하에서 정부는 위기관리,감독,서비스 기능을 수행하고 대다수
경제활동 기능은 민간이 수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해야할 기능의 보강보다 하지 않아도 될 기능의 수호에
머물러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점은 정부의 기능을 극단적으로 경시하여 모든
경제기능을 시장에 자유방임하겠다는 것은 경계해야 할 점이다.

시장 실패시 리더십과 효율성의 위기가 초래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넓어진 활동 범위 내에서 민간의 자율적 책임이 강화되야 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이다.

새로운 틀이 짜여지면 우리는 경제 위기를 초래했던 직책 원인의 해소에
도전해야 한다.

먼저 우리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뻗어 내린 중복 과잉 체제의 뿌리를
이번에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공무원 조직, 각종 기관 단체, 연구기관, 금융기관, 정치권, 방송 언론계,
대학 등등 사회적 기반을 필두로 경제 내부에도 재벌간, 산업간, 기업간
얽히고 설킨 중북 과잉 투자가 주는 원천적 낭비 요인이 근본적으로
정비되어야만 국가 경쟁력이 되살아 날수 있다.

다만 중복 과잉의 해소 방법이 문제인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규범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기초 작업과 병행하여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국가 전체의
부가가치 창출력 회복이다.

고부가가치는 신기술, 신시장, 신경영에서 창출된다.

그러나 그것에는 피와 땀과 위험이 필수적으로 따른다.

21세기에 있어 신기술과 관련한 부가가치 창출의 총아는 단연 지적
재산권이다.

기술개발이라는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을 현금화하려면 지적 재산권이라는
"권리"로 바꾸어야만 한다.

이렇게 볼때 오늘 우리에게 있어 기술개발과 지재권 관련 인력과 예산은
씨나락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 배가 고프다고 씨나락을 까먹어서야 우리에게 내일은 없는 것이다.

과거 경제난국의 위기때마다 월남 특수, 중동 특수, 중국 특수가 우리를
살렸다.

지금 씨나락을 까먹어버리고 또 하나의 특수에나 국운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참으며 씨나락에 희망을 걸고 도전에 나설 것인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