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에도 불구하고 내일이면 어김없이 또 설을 맞게된다.

중국 당나라때의 "연연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해마다 꽃은 그
꽃이언마는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아니하네)이라는 구절이 있어 덧없는
인생을 영탄할때 곧잘 인용된다.

기쁘고 흥겹고 희망에 차야할 설날에 앞서 인생사의 무상함을 얘기하는
것은 계제에 맏지 않는듯 하지만 우리의 각박한 처지가 그런데 어찌
하겠는가.

IMF에 쫓기어 가족대표 한사람만 귀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감이 줄어든 공장에선 아예 1주일을 쉬는 곳도 있다.

선물꾸러미도 드물어졌을 뿐더러 예년보다 초라해졌다.

오랜만에 가족 친족들끼리 만나면 세상살이 고달품을 털어놓게 될게
뻔하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설"에는 "섧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열살 남짓까지만 색동저고리 입고 세배돈 받는 맛에 설이 마냥 즐거웁지
세배돈 줄 처지가 되면 나이를 먹는 것이 서러울 수 밖에 없다.

설날에는 떡국을 먹게 되는데 속담에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 그릇째
먹었느냐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에는 또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정월 초하루에 1년내내 아무 탈없이 보내게 해달라는 소망이 곁들여 있는
것이다.

설을 한문으로 원단 원조 같은 말 말고 신일이라고도 쓰는 것은 바로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설의 어원을 육당과는 달리 찾아본 사람도 있다.

한자의 입자나 건자에서 말밑을 살펴본 것이다.

설 ''립''자나 세울 ''건''자는 다같이 "서다"라는 으뜸꼴을 갖고 있으며
이말의 "서"가 어미변화를 일으켜 "설"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이렇게 보면 설은 그야말로 마음이 설(서야할)날이 된다.

설이 서러운날의 뜻이라면 지금 우리의 IMF처지를 말해준다.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도 살어름판 걷듯 신중해야 하는 우리 형국에 딱
맞는다.

어원이 "서다"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또한 바로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
아닌가.

내일 설날 우리는 IMF의 서러움을 딛고 신중하고 굳건하게 다시 설
마음을 가다듬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