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원이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지원 종합대책은 중소기업의 각종 애로
사항을 폭넓게 수용하되 국제통화기금(IMF)관리경제시대에 수반되는
중소기업의 극심한 자금난을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일단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이 돈을 쉽게 빌릴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은행
총액대출한도와 업체당 신용보증한도를 늘리고 올해 만기도래 외화표시
원화대출금 상환기한을 1년 연장해주는 한편 중소기업 수출환어음의 금융기관
매입을 촉진키로 한 것 등은 빈사상태의 중소기업을 살리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외형적으로는 금융 외환 보증 세제 벤처기업활성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대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비현실적이고 효과가 의문시되는 점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중소기업 지원대책들을 발표해오고
있지만 대개 현실과는 동떨어진데다 경쟁력과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으로서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몇몇 지원대책들은 립 서비스로 끝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은행 총액대출 한도
확대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은의 총액대출 한도를 1조원 늘린데 이어 2월부터
1조원을 추가로 늘려 중소기업의 상업어음 할인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는 현실을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기업의 어음 결제기간이 크게 늘어나 은행이 쉽게 할인해 줄수 있는
만기 3개월 이내 적격어음이 대폭 줄었는데도 적격어음 자체를 늘리는
대책은 없이 할인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자칫 공허한 숫자놀음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 벤처기업에 연간 2백만달러 이내에서 3년 이하 단기 외화자금을
올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차입할수 있도록 허용한다지만 대기업도 신용도가
떨어져 해외차입이 어려운 판인지라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이밖에 중소기업에 자금이 쉽게 흘러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세무조사 등의
방법을 동원해 미등록 대금업자를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것도 비현실적인
발상이기 쉽다.

대금업자를 세무조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자칫 자금업 자체를 위축시켜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 자금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락의 위기와 성장의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대기업의 군살빼기는 많은 중소기업의 시련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몸집이 가볍고 경쟁력있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있는
다시없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우리에겐 일본의 니콘과 같은 중소기업이 없는가"
라고 한탄만 해서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백화점식 종합대책의 나열보다는 한가지라도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성실하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