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조세연구원장>


국제 경제학계에서 아시아의 경제위기에 대해 지금처럼 심각히 논의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태국의 바트화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도 곧 아시아의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였다.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돼온 추세가 문제시된 것은 사실이나 전통적으로
통화위기의 주요 경제적 요인으로 지적되는 방만한 재정운영, 고율의 인플레,
그리고 높은 실업률 등을 아시아 통화위기의 유발요인으로 들기에는 충분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수지적자가 현격히 축소되는 추세에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한편 아시아의 경제발전이 지속될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훨씬 전부터
제기되었었다.

미 MIT대학의 크룩만 교수의 주장이 그 대표적 예이다.

그에 의하면 요소생산성의 향상이 수반되지 않고 자원투입에만 의존하는
성장전략은 장기적으로 효과적일수 없으며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에 근거한
경제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제도의 효율성을 도외시한 양적 팽창전략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우리에겐 뼈아픈 지적이었다.

최근 크룩만 교수는 "아시아에 무엇이 일어났는가"라는 논문에서
통화위기의 새로운 요인을 제기하고 있다.

과잉투자, 도덕적 해이, 자산가치의 버블 등이 그의 핵심개념이다.

기존의 경제교과서적 분석에서 핵심 변수는 환율이었다.

고정환율제하에서 고평가된 환율수준을 방어하려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되고,
국제신인도가 하락하자 투기자금의 공격으로 통화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
위기 발생의 일반적인 경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크룩만 교수는 아시아의 위기는 통화나 환율변수의 변화로는
설명될수 없으며 금융과다와 금융붕괴가 그 주요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재무구조가 건전하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암묵적으로 정부의 보증을 전제로
자금을 과다하게 공급하는 도덕적 해이현상이 나타났으며 그 결과 오히려
위험자산의 가치가 높아져 자산 버블현상이 야기되었는데 이러한 버블붕괴가
위기를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위기에 당사국들과 더불어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는 IMF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피셔 수석부총재가 지난주 발표한 "아시아 위기-IMF의 견해"라는
보고서에서는 위기의 국내적 요인을 다음 세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경기과열현상을 제어하지 못하여 과다한 대외적자와 재산및
주식가격의 버블화가 시현되었고, 둘째 고정환율제의 장기간 유지로
대외차입이 유발되고 금융과 기업부문이 외환위기에 당면하게 되었으며,
셋째 금융에 대한 건전성규제가 이완되어 은행의 대출구조가 질적으로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대내적 요인에 선진국경제와 국제 금융시장
상황이 가세하여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과 유럽의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국내 투자기회가
부족하였으며, 또한 이자율이 낮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으로 민간자본이
대규모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제투자가들이 위험가능성에 대한 적절한 고려없이 무분별하게 고수익을
추구한 것과, 지난 3년간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변동폭이 지나치게 컸던
것도 위기의 요인으로 꼽고 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거시경제운영의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개방경제하에서는 경제성장률 제고보다는 국제수지의 균형달성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대규모 외채부담을 지고있는
우리의 경우 피할수 없는 선택이다.

이 경우 투자와 소비의 감축, 재정긴축 등으로 성장이 저하되는 것을
감내하고 대외거래 불균형을 시정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하여야 한다.

환율 금리 통화 세제 재정 임금 등 거시경제변수들이 이러한 정책목표에
부합하여 상호일관성을 유지하는 적절한 정책조합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
경제운영의 관건이다.

한편 위기를 불러일으킨 요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각 경제주체들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우리의 시야를 단기적 현상, 내부적 요인에 국한시켜서는 올바른
해답을 찾기 어렵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개방된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명제다.

모든 경제주체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일단 결정된 다수의 의견에는 승복하는 관행을 반드시 확립해야 한다.

우리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오래 전부터 인지돼왔으나 이에 대처하기
위한 과단성있는 구체적 개혁프로그램을 실천하지 못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국제신인도를 떨어뜨려 IMF지원을 초래한 근본적 요인이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대기업집단의 구조조정, 중앙은행의 독립,
금융감독기능의 강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경제개혁 프로그램 추진을 지체할
명분도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