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반도체 등 반도체메이커들의 전.현직 직원들에 의해 64메가D램
핵심기술이 대만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 산업계의 기업보안에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와 LG반도체가 도난당한 기술은 64메가D램 제3세대 제품의
핵심기술.

아직 두 회사 모두 정확한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들의 근무처를
감안할 때 여러 제조공정의 핵심기술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64메가D램 제3세대 제품의 핵심기술은 국내업체와 일본의 NEC 등
몇몇업체만 확보하고 있어 세계 반도체업계가 군침을 삼켜온 최첨단
기술이다.

이들이 기술을 빼돌린 곳은 대만의 N사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는 기술 유출의 창구역할을 한 국내 KSTC사와 기술협력 계약을
맺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의 반도체메이커 오키사와 협력해 D램사업에 뛰어든
업체였으나 최근 오키사가 D램 사업을 포기하자 새로운 D램 기술확보에
안간힘을 써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이 기술의 유출이 N사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대만 반도체업계 전체에 유출됐다면 연말로 계획되어 있던 대만업체들의
64메가D램 양산시점이 크게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럴 경우 64메가D램 양산으로 멀찌감치 달아나려던 한국 반도체업계의
"대만 도태시키기 전략"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더큰 문제는 국내기업들의 보안의식을 살펴볼 때 이같은
산업스파이사건이 단발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자타가 공인하듯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보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선 공장은 물론 서울의 본사까지 사전에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회사내부로 침입이 불가능하다.

기흥반도체공장은 정문앞에 전자장치를 마련해 퇴근시 직원들이 디스켓을
소지하고 나갈 경우 디스켓에 담긴 내용이 자동으로 지워지게 돼 있다.

서류가방도 검색한다.

외부인이 회사로 찾아오더라도 반드시 별도로 마련된 면회실외에는 접견이
불가능하다.

팩시밀리도 통합팩스망이 구축돼 반드시 흔적이 남도록 돼 있다.

보안교육도 철저하다.

LG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PC나 워크스테이션에는 복사를 할 수 있는 장치를
아예 삭제시켜 놓았으며 전자메일등도 외부와 연결될 때에는 중간에
보안장치를 거치도록 해놓았다.

퇴직 인력에 대해서는 근무시 취득한 기밀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보안각서를 받는 것은 물론 이들의 근무지를 추적, 항상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미국 산업안전협회는 산업스파이 활동의 30%는 회사의 현직원, 28%는
퇴직 직원들에 의해 자행되는등 적어도 58%가 내부소행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외부의 회사자문과 컨설팅업체들을 통한 정보유출을 포함하면
회사가 완벽히 처리해낼 수 있는 보안은 20~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삼성전자나 LG반도체의 관계자들도 "머리에 기록된
정보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전자업계 외에도 기계 조선업체들도 핵심정보와 기술을 다루는 지역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등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직원들에 의한
정보유출에는 속수무책이다.

보안교육외에는 직원들의 애사심과 애국심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IBM의 경우가 타산지석이다.

IBM은 전세계 43개국에 37만명의 종업원을 두고서도 정보유출 사례가
거의 없어 "비밀의 성"으로 불린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보안대책은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복제를 막기
위해 핵심부품에 블랙박스를 설치한다.

외부상담때도 철저한 매뉴얼을 만들어 한정된 자료만을 공개한다.

핵심부문에 근무했던 퇴직자에 대해서는 몇년치 봉급을 계속 지급하면서
관리를 한다.

한 보안전문가는 "근무중인 직원들에 대한 보안의식 제고도 중요하지만
채용시 보안업무 적격심사에서 퇴직후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보안업무의 테두리에 넣는 개념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안기부 기업보안 수칙 ]]

"인사불만자를 눈여겨 지켜보라" "컨설팅업체에 모든 것을 말해주지
말라"...

안기부가 기업 대상의 보안교육을 펼치면서 강조하는 금싸라기 수칙들이다.

<>내부에는 늘 적이 있다 =알콜중독, 무분별한 성생활 등으로 주요간부들이
약점을 잡혀 회사기밀을 누출할 우려가 크다.

평소의 생활태도를 점검해야 한다.

보수가 적다거나 인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주의하라.

<>외국인 위장취업을 조심하라 =경쟁 외국업체 사장 아들이 국내에 취업해
신임을 얻은후 생산기술을 통째로 들고 출국한 사례가 있다.

핵심 기술을 아는 사람은 적을 수록 좋다.

<>컨설팅회사도 주의하라 =경제연구소나 외국 컨설팅회사에 경영진단을
의뢰할 경우 세세한 경영실태를 알려주면 그 내용이 곧바로 경쟁회사나
정보사냥꾼에 흘러들어 갈수 있다.

<>도청 =시계나 손가방안에 도청시스템을 만들어 도청하는 경우는 흔하다.

심지어 구두닦이 호텔종업원 청소부 등을 매수하는 경우도 있다.

핵심경영사항은 필담으로 할 필요가 있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