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인원, 이글이 반갑지 않다"

IMF가 골퍼들의 최대기쁨도 앗아갔다.

요즘 골퍼들은 평생 한번 할까말까한 홀인원을 하고도 쉬쉬 한다.

로핸디캡골퍼들의 경우 이글이 나오면 기뻐하기는 커녕 쓴약을 먹은듯한
표정이 역력하다.

홀인원, 이글 등 진기록을 작성하거나 생애 처음 싱글핸디캡에 진입하면
동반자들로부터 기념패를 받게 마련이고 그 보답으로 한턱 내야하는데
그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골프장이나 매스컴을 통해 이름이 외부에 알려져 눈총을 받을까봐
모처럼 작성한 진기록의 공개를 꺼리고 쉬쉬하는 경향도 없지않다.

이런 연유에선지 최근 홀인원을 했다는 골퍼들을 여간해서 찾기 힘들다.

기념패를 안받아도 좋으니 그냥 넘어갔으면 하는 골퍼들이 많다.

일부에서는 이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홀인원 한번 했다고 해서 축하연에 기념패 기념식수 등으로 골퍼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씌워온 관행은 이제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골프협회(KGA)는 매년 이맘때 전년도에 국내골프장에서 기록된
홀인원을 집계한다.

IMF한파가 본격 몰아친 지난12월 한달동안 전체 홀인원수는 19회에
불과했다.

11월(45회)에 비해 절반이하로 뚝 떨어졌고, 96년 같은기간(25회)에
비해서도 25%나 줄어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접수받아 매주 수요일자에 발표하고 현대전자의
걸리버핸드폰을 상품으로 시상하는 "한경홀인원상"도 12월21일이후 실적이
전무하다.

내장객 자체가 줄어든 것이 큰 요인이긴 하지만 홀인원을 하고도
비용부담이나 주위의 눈총을 의식해 통보하지 않은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현상은 골퍼들의 기념패를 제작해주는 업소들의 불황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로피 기념패 전문제작업소인 (주)화랑기획은 지난해 이맘때에는
싱글진입 이글 홀인원 등 각종 기념패제작 주문이 하루 3-4건에 달했으나
올 겨울에는 전무하다시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관계자는 "계절적 요인보다는 IMF한파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월말 여주CC 13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S씨.

그는 생애 첫 홀인원을 잡아 기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홀인원턱"을
치르느라 이러저런 배려를 해야했다.

당일 축하자리는 그렇다치고 동반자들이 마련해준 기념패를 받기 위해
또한번 모임을 가져야 했다.

또 그 답례로 동반자초청 라운드도 가졌다.

경비와 시간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요즘시대에 걸맞지 않는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S씨의 홀인원이나 파4홀에서 어프로치샷이 이글로 연결되는 기록은 운이
따라야 하는 만큼 어쩔수 없는 경우다.

요즘 웬만한 골퍼들은 파5홀에서 이글퍼팅 기회가 와도 그것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 김경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