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의 재계 파트너로 실물경제를 이끌어갈 민간경제계 대표들의 면면은
문민정부 출범초기인 5년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창업1세에서 2세로,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세대교체가 많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부도로 사라진 그룹도 적지 않아서다.

약진에 약진을 거듭해 새로 재계의 실력자로 등장한 신흥기업 총수들도
많이 눈에 띈다.

오는 6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의 오찬간담회에 초청된 30대그룹(실제론
31개 그룹)대표 명단에는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 속에서 크게 달라진 한국
재계의 판도가 그대로 나타나있다.

지난 5년간 30대그룹의 자리를 지키고 회장도 바뀌지 않은 그룹은 절반인
15개에 불과할 정도다.

국민회의측이 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통보해온 초청자 명단에 따르면
새롭게 30대그룹으로 부상, 당선자와의 면담자리에 동참할수 있게된 그룹은
모두 7개.

삼성에서 분가한 한솔과 새한그룹을 비롯 신흥중견기업으로 무서운 성장을
계속해온 거평과 신호그룹은 당당히 자기 실력으로 새당선자와의 오찬에
초청됐다.

이밖에 전통의 기업들로 상위기업들의 탈락에 따라 순위가 당겨진 동양화학
강원산업 동국무역그룹 등도 재계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7개그룹 총수들은 김영삼 정권초기인 지난 93년7월2일 이뤄진
김대통령과 30대그룹총수와의 만찬회동을 언론을 통해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지난해 30대그룹에 진입한 나승렬 거평회장과 이순국 신호회장 등은
그동안 보수적인 재계의 텃세 아닌 텃세로 30대그룹으로서 혜택은 적게 받고
상호지급보증해소, 여신규제 등 불이익은 같이 받아온 후발주자의 설움을
이번에 한꺼번에 만회하게 됐다.

그런가하면 만35세로 최연소자인 이재관 새한그룹 부회장은 삼촌인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동석하는 영광까지 안게됐다.

새로 등장한 그룹과 꼭 같은 숫자가 부도등으로 좌초, 상위그룹 편성표에서
사라졌다.

특히 지난 1,2년사이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5년전 대표가 청와대를
찾았던 기업 가운데 이날 초청대상에서 빠진 기업이 7개나 된다.

기아 삼미 한라 진로 우성 대농 극동건설 등이 그들이다.

특히 기아의 경우는 새정부측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절호의
자리에 총수가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가질수밖에 없게됐다.

그룹의 순위는 30대내에 그대로 있지만 대표의 얼굴이 바뀐 그룹도 적지
않다.

정몽구 현대 구본무 LG 김석준 쌍용 박정구 금호 박용오 두산 김희철
벽산그룹회장 등 세대교체 등으로 지난 5년 사이 새로 취임한 회장들이다.

특히 김병진 대림 고두모 미원회장과 구형우 한솔부회장 등은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그룹의 대표를 맡아 새대통령 당선자와 점심을 함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초청대상에도 그대로 끼어있고 회장도 바뀌지 않은 그룹은
삼성 대우 SK 한진 한화 롯데 동아 등 15개 그룹뿐이다.

한편 이번 초청자 명단을 작성하는데는 상당한 고충이 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소위 30대그룹이 매출액 자산 여신관리 등 기준을 바꿀 때 마다
달라지는데다 각 기준을 적용한 명단에서도 부도 내지 화의신청 등으로
탈락한 기업이 적지 않아 명단 작성 자체가 어려웠다.

또 전경련에서 30대그룹 기조실장 회의 등을 할 때 사용하는 명단은
기존 회원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객관적인 순위를 반영하지 못해 크게
참조가 되지 않았다.

국민회의측은 이에 따라 각종 기준을 골고루 적용하고 탈락한 숫자만큼
하위그룹의 순서를 당겨가며 겨우 명단작성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30대그룹이라면서 31개 그룹을 초청한 것은 이런 고민의 일단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새대통령당선자와 재계대표들과의 첫만남이 어떤 형식으로 새로운 5년의
비전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