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학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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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한파로 우리사회의 온갖 취약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버블이 뚜껑처럼 덮어놓고 있던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그것이 깨지면서
되돌아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
과소비 과잉고용 과잉투자 형식주의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정신차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상아탑들도 버블속에서 덩치만 커졌기 때문에 과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느냐 하는데 의문이 가는 것이다.
이래서 IMF한파는 이곳에도 몰아칠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봉급을 못주고 있는 대학도 있다고 한다.
사회적 수요와 어긋나서 졸업생들의 취업을 더욱 어렵게 하기도 한다.
대학들도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대학의 주요한 사명은 연구와 교육이다.
교육도 다부지지 못하지만 연구성과는 선뜻 긍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약하다.
선진국들에서는 산업계가 대학들의 연구성과에 따라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하는 예가 많다.
한국의 대학들도 이런 노력을 전연 안하는건 아니지만 지적 성과가 크게
뒤처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 보스턴교외의 루트 128지구나 실리콘밸리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벤처기업들은 MIT공대나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성과를 사업의 원천으로 삼는
곳들이 많다.
94년 미국대학들의 특허취득 건수는 무려 1천8백62건이나 된다.
캘리포니아대학의 1백80건을 필두로 MIT의 1백8건, 스탠퍼드대학의 62건
등 명문대학들의 연구업적이 뛰어나다.
이에 비해 94년 일본대학들의 특허취득은 고작 1백24건으로 미국과 5배의
차이가 난다.
이것이 미국이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주된 이유이다.
97년 MIT공대의 특허건수는 1백30건, 이중 기업들에 특허실시를 허용한
것이 59건에 이른다.
특허관련 수입이 2천1백20만달러, 로열티만 1천3백20만달러이다.
이것이 연구활동을 더욱 부추기는 밑천이다.
한국대학들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학사행정의 군살빼기, 구내식당이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더 근본적 구조조정은 연구활동촉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5일자).
버블이 뚜껑처럼 덮어놓고 있던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그것이 깨지면서
되돌아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
과소비 과잉고용 과잉투자 형식주의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정신차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상아탑들도 버블속에서 덩치만 커졌기 때문에 과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느냐 하는데 의문이 가는 것이다.
이래서 IMF한파는 이곳에도 몰아칠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봉급을 못주고 있는 대학도 있다고 한다.
사회적 수요와 어긋나서 졸업생들의 취업을 더욱 어렵게 하기도 한다.
대학들도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대학의 주요한 사명은 연구와 교육이다.
교육도 다부지지 못하지만 연구성과는 선뜻 긍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약하다.
선진국들에서는 산업계가 대학들의 연구성과에 따라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하는 예가 많다.
한국의 대학들도 이런 노력을 전연 안하는건 아니지만 지적 성과가 크게
뒤처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 보스턴교외의 루트 128지구나 실리콘밸리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벤처기업들은 MIT공대나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성과를 사업의 원천으로 삼는
곳들이 많다.
94년 미국대학들의 특허취득 건수는 무려 1천8백62건이나 된다.
캘리포니아대학의 1백80건을 필두로 MIT의 1백8건, 스탠퍼드대학의 62건
등 명문대학들의 연구업적이 뛰어나다.
이에 비해 94년 일본대학들의 특허취득은 고작 1백24건으로 미국과 5배의
차이가 난다.
이것이 미국이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주된 이유이다.
97년 MIT공대의 특허건수는 1백30건, 이중 기업들에 특허실시를 허용한
것이 59건에 이른다.
특허관련 수입이 2천1백20만달러, 로열티만 1천3백20만달러이다.
이것이 연구활동을 더욱 부추기는 밑천이다.
한국대학들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학사행정의 군살빼기, 구내식당이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더 근본적 구조조정은 연구활동촉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