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기업인수 합병이 한창 붐을 이루고 있을 때인 1980년대의 일이다.

나중에 뉴욕시장이 된 루돌프 쥴리아니 검사는 12년동안 바하마에 있는
스위스은행을 통해 내부자거래를 해왔던 혐의로 데니스 레빈이란 투자회사
직원을 구속했다.

증권회사 직원의 여자친구가 보낸 투서를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였다.

수사결과 이들의 불법행위는 사실로 드러났다.

정크본드 전문 투자회사인 드렉셀번햄은 6억3천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고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마이클밀켄은 10억달러의 벌금을 내고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증권계에서 일할수 없도록 추방됐다.

이밖에도 많은 관련자들이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다.

이들이 인수합병 비지니스를 통해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이나 벌금 때문에
거의 바닥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사건은 내부자거래나 시장조작 등 불공정거래를 적당히 해도 된다는
월가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증권당국과 검찰의 감시망에 포착되면 그누구라도 빠져 나갈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 검찰과 증권당국의 이같이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없었다면 미국월가는
아마도 사기꾼과 협잡군들의 난장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수많은 투자가들이 증권투자를 외면했을 것이다.

지금 뉴욕증시는 활황을 거듭하고 있고 기업들에게 저리의 자금을 쓸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0년전 뉴욕증시의 얘기를 꺼내는 것은 외국인의 적대적인 기업인수합병이
이달중으로 허용되면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실제로 미국이나 홍콩의 인수합병 전문가들이 지금 한몫 챙기기 위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이다.

물론 국내 우량기업을 인수해 직접 경영할 생각이 있는 사업가나 기업들은
보호돼야 한다.

이들이 인수한 기업에 추가로 투자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단기차익을 노려 내부자거래 시장조작 등 불공정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투기자들도 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은 이미 국내주식시장에서 우량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여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두달동안 2조원이상의 주식을 사들였다.

우량기업중엔 외국인 지분이 국내 대주주지분보다 많은 곳이 적지 않을
정도이다.

주총을 앞두고 이사선임을 요구하거나 해외투자에 제동을 걸겠다고 통보해
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설마하던 경제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어떻게 하면 경영권을 지킬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해야 외국인들의 경영간섭을 막을수 있을까?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들에게는 이런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 IMF 위기에 휘말려 빗장을 열어버린 정부나 경영권 방어책을
사전에 마련해 두지 못한 기업을 탓할수만은 없다.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더욱이 새정부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허용했으니 외국자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안심해선 안된다.

가장 시급한 일은 기업인수합병에 관한 룰을 만드는 일이다.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사업가는 방해하지 않되 단기적인
투기꾼들에게는 불법행위를 할 틈을 주지 않는 법률과 행정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 여건은 외국의 투기꾼들에게는 거의 무방비상태로
열려 있다.

제도는 마련돼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는 노하우나
경험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투기꾼들이 우리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꼭 경영권을 획득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경영권이 목적이 아니라 최고 수익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불공정거래가 빈발한 가능성이 크다.

국내 감독기관이나 사법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과거 국내 여의도 증권가에서 각종 불공정거래가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것을 보아온 터라 더욱 걱정이 앞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