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권오관(57) 부원장은 지난 78년 영국 유학
시절에 겪은 경험을 잊지 못한다.

윤활공학 연구차 갔던 영국에서 컴퓨터를 접하고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알고 있던 컴퓨터가 윤활공학을 공부하는데도
기본이 돼있었기 때문.

컴퓨터 학습은 피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당시에는 포트란 언어로 프로그램을 직접 짜야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독학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 과정은 컴퓨터에 대한 기본지식을 습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영국유학시절 배운 컴퓨터 지식이 평생의 자산으로 남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밤을 밝히며 연구에 몰두할 때 컴퓨터는 그의 친절한 동반자였다.

권부원장은 우리나라에 윤활공학이라는 신기술을 들여온 장본인.

자전거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기계부품이 접촉하는 곳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윤활공학의 대가이다.

우리나라의 한림원격인 영국의 왕립공학원 석좌교수인 그는 국내보다
영국학계에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컴퓨터에 대한 완벽한 지식없이는 연구를 완성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후배 연구원들에게 컴퓨터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에 익숙지 못한 일부 40~50대의 연구원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들에게 컴퓨터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컴퓨터 연구과제를 맡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책상 연구 일선에서 한 발 물러선 그는 요즘 행정업무에 대한 컴퓨터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전자결재를 위한 그룹웨어시스템을 개통했는가 하면 모든 도서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관리토록 했다.

최근엔 컴퓨터그래픽기술을 익혀 KIST연구물 발간에 직접 응용하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권부원장은 국가정보화 사업이야말로 21세기를 앞둔 지금 최우선 정책
과제라고 강조한다.

정부 예산이 삭감되고 각 기업의 투자여지가 줄더라도 정보화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보화에 대한 투자가 없다면 IMF위기 이후의 도약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행정전산망 구축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표준을 마련,
기업이 이를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국가 정보표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보인프라없이는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 한우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