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9일 국민회의 당무위원 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은행임원 인사에 일절 개입하지 말도록 엄명함에 따라 3월 은행임원 인사
결과가 새정부의 "민간자율" 원칙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전망이다.

김당선자는 이날 국민회의 총재자격으로 이같이 말했지만 자민련도 공동
정부를 구성하게 돼 있는 만큼 김당선자의 은행 인사개입 불용방침은
자민련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김당선자는 이날 이례적으로 "나도 단 한군데도 말(개입)하지 않을 테니
은행의 인사에 간접적으로라도 개입하지 말아달라"고 참석자들에게 강력한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회의가 김당선자측의 핵심세력을 총 망라한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
회의였던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경고성 당부"는 새정권하에서 권력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핵심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당선자는 "주식 한 주도 없는 정부가 은행임원 선임에 개입하는가 하면
돈을 빌려줘라, 말라 해왔다"고 과거의 관행들을 지적한뒤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보사태"를 꼽았다.

김당선자가 한보사태를 직접 언급한데는 현정권이 한보사태에 깊숙히 개입,
결국 몰락을 자초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당선자로서는 김영삼정권의 전철을 뒤풀이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김당선자는 특히 "오늘날 금융위기가 경제전반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제는 여당의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관치금융이 사라져야 한다는 경제철학의 일단도 내비쳤다.

김당선자의 이날 발언이 여권 일부관계자들의 개입움직임 사례를 이미
포착하고 나온 것인지 아니면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사전예방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국민은행의 동서증권 인수검토와 관련해 국민회의 고위관계자가
동서증권을 인수토록 외압을 가했다는 설이 나돌았던 적이 있어 이러한
소문들이 김당선자의 경고성 발언의 배경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한 측근은 "확인 결과 외압설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고 말했지만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일부 관계자들이 지방의 농.수.축협조합장 선거와 일부 경제단체장
선거에서 자신과 연고가 있는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로 잡음이 일고 있다는
점도 의식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새정부가 출범 하기도 전에 각종 "인사잡음"에 휘말릴 경우 김당선자에게
큰 흠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도 집권초기에 "자율인사" 원칙을 강조했으나 결과적
으로 민주계의 입김이 곳곳에 작용한 일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당선자의
의지가 현실적으로 관철되기 위해서는 권력 핵심인사들의 철저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건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