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속에서 부채비율이 높거나 현금 유동성관리에
실패한 기업들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3천여개 이상의 기업이 부도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고, 당분간
이런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업이 자금부족으로 부도가 나는 경우 채권자의 양보를 얻어 파산을
예방하거나 파산절차를 밟는 길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기업이 충분한 자산을 확보하고 있고 흑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유동성 결여로 부도가 난 경우도 이들 기업을 파산시키는 것은 채권자나
채무자 기타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오히려 해치게 된다.

이에따라 요사이 일시적 자금경색 현상으로 부도가난 기업들이 화의신청을
하고 있다.

이때 화의는 채권자의 양보를 얻어내 파산을 예방하여 기업의 유지를
가능케 하는 제도이다.

즉 채무액과 변제기간 등에 관하여 채무자에게 여유를 주어 가급적
채무자가 재산의 충실을 기할수 있게 하고 변제능력을 증가시켜 채권관계의
결말을 원만하게 종결시키고 기업을 회생시키는 제도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화의제도를 왜곡하여 화의신청을 하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이를 시정하기 위한 법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즉 종래의 기업소유주가 회사의 파산을 방지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할수
있고, 화의 인가후에는 특별한 감독기관이 없다는 매력 때문에 적절하지
아니한 회사임에도 화의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번 화의법 개정안의 골자는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는 화의인가의 필수조건으로 경영권자의 회사지분 전체가 화의채권을
위한 담보가 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는 종래의 경영권자가 화의에 의하여 경영권을 유지하며 채무이행을
게을리할 경우 담보권의 실행으로 주식을 박탈하겠다는 것으로, 현행
제도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둘째는 기업의 재정파탄 원인이 종래의 경영자의 고의적 부실경영이나
회사재산의 유용 또는 은닉에 기인하는 경우 화의신청을 기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회사의 파탄상태를 초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종래의
경영권이 유지되는 화의제도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당연한 개정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의 세번째 조항으로 채무자의 자산, 부채의 규모,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수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화의절차에 의함이 부적합한
때에는 화의신청을 기각하는 특례조항을 신설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기업들의 일시적 경영문제와 관련하여 세번째 조항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이 특례조항은 "자산.부채의 규모", "이해관계인의 수"라고 하고
있으나 각 항목이 어떤 의미가 있고 구체적으로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위 규범에 대한 위임 문구가 없다.

또한 "제반 사정"이라는 포괄적이고 불확정된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
"부적합한 때"라는 막연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특례조항은 건전한 일반상식을 가진 사람이 보아도 필수적으로
기각하도록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특례조항은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있다.

또한 이 특례조항이 자산.부채가 일정 규모 이상이거나 다수의
이해관계인을 가지는 경우 화의신청을 기각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형평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단순히 자산.부채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의 경우는 화의가
가능하고, 대기업의 경우는 법에 의하여 화의가 가능하지 않다면 제도의
본질에도 반한다 하겠다.

결국 화의는 법원 등의 최소한의 감독아래 당사자인 채무자와 채권자들간의
양보에 의한 합의를 그 본질로 하는 이상 화의성립 여부를 채권자로 하여금
1차적으로 판단케 하는 것이 타당하며, 법원이 사전적으로 채무자의 자산및
부채의 규모나 이해관계인의 숫자 등을 근거로 화의신청을 기각하는 것은
화의의 본질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번 화의법개정과 관계없이 회사정리법에 의하면 일정 채권자(회사자본의
10분의1 이상에 해당하는 채권을 가진 1인 또는 수인의 채권자)가 회사정리
절차개시를 신청하는 경우 법률상 화의절차에 우선하게 되어있다.

회사 정리절차를 택할 것인지의 여부는 채권자의 판단에 맡겨야지 법원이
개입하여 일률적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회사를 화의절차에 의하지 못하도록
기각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나아가 화의개시 신청이 기각되어 파산절차로 이행됨으로써 일반채권자의
경우 예측할수 없는 손해를 입을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명확성과 형평성이 결여되어 있고 화의제도 본질에 위배되는
세번째 특례조항은 개정안에서 필히 재론되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