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헐값 대처분"

나산 서광 등 IMF의 한파에 쓰러진 기업들이 긴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의류같은 것을 평소가격의 10~20%로 판다는 광고문구다.

눈물의 헐값 대처분은 주식시장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은행 보험 증권 등 기관투자가들이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문채 보유주식을
바겐세일하고 있다.

주가가 폭락했던 지난해 11월부터 2조9천9억원어치나 처분했다.

"증시안정 기능을 담당해야 할 기관이 오히려 주가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따가운 눈초리에는 무감각해진지 오래다.

주식을 갖고 있을 "여유"와 "재미"가 없어서다.

기관들은 기업의 연쇄부도와 종금사 폐쇄, BIS 자기자본비율 등으로
주머니사정이 빡빡해지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서바이벌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푼이 아쉬워 헐값이라도 돈이 될만하면 주식을 내다팔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식을 갖고 있어도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투자신탁이나 은행신탁계정등은 "섀도보팅"(shadow voting)이라고 해서
다른 주주들이 결정한 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경영에 참여하는 재미가 없으니 굳이 주식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가 허용된다고 해서 주식을 사들이고
있어도 기관들엔 "남의일"일 뿐이다.

외국인들은 올들어 주식을 2조4천억원어치나 사들였다.

국내 최대주주보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상장회사가 30개를 넘어서고
외국인이 5% 대주주로 등장한 회사도 27개에 달할 정도다.

앞으로도 은행 보험 등 기관들은 팔고 외국인은 사는 추세가 이어져 2조~
3조원어치의 주식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기관이 주식을 보유할 여유와 재미를 찾지 못하면 헐값세일은 더욱
확산될지도 모를 일이다.

홍찬선 < 증권부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