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 김성국 <대우자동차 인력관리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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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들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으면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누가 만약 나에게 왜 그 힘든 육체미를 하느냐고 물어 온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거기에 자신이 있으니까"
육체미라는 운동은 상대가 없는 운동이다.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싸움일 뿐이다.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설득도 하고 꾸짖기도 하면서 끝없이 나 자신과
대화를 하다보면 바로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평상시 잊고 살던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육체미를 한다.
우리 대우자동차 헬스동우회는 회사가 89년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복지회관을 세우고 그 안에 체력단련장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최초의 회원들은 대부분 건강유지 차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비만으로 고민하던 회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운동 경력이 한두해 쌓이면서 94년부터는 경기에도 출전하기
시작했다.
"94년 미스터 인천 선발대회"에 첫 출전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 이후로는 해마다 입상자를 내며 우리 동우회의 위상을 높였다.
96년도에는 김양균 회원과 이민재 회원이 65kg급과 85kg급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으며 작년에는 오형근 회원이 60kg급 3위를, 김양균 회원이 장년부
2위를 차지했다.
올해에는 인천 지역대회를 뛰어넘어 전국대회에도 참가해 볼 계획이다.
96년에 85kg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민재 회원의 경우 1백kg에 육박하는
비만으로 시달리다가 우리 모임에 들어온 이후 85kg으로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힘든 운동을 하다보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기 때문에 머리가 길면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 회원 대부분이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다닌다.
운동을 마치고 가끔 회원들과 어울려 회사 근처 술집에서 소주라도 한잔
기울일 때가 있는데 주위 좌석의 손님들이 모두 겁을 낸다.
울퉁불퉁한 가슴팍에 머리는 한결같이 짧은 것이 영락없이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것이다.
가끔은 진짜폭력배들이 나타나서 시비가 생길 때도 있으나 우리 회원들의
깊고 넓은 인간성에 감복하고 돌아간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2일자).
대답한다고 한다.
누가 만약 나에게 왜 그 힘든 육체미를 하느냐고 물어 온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거기에 자신이 있으니까"
육체미라는 운동은 상대가 없는 운동이다.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싸움일 뿐이다.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설득도 하고 꾸짖기도 하면서 끝없이 나 자신과
대화를 하다보면 바로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평상시 잊고 살던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육체미를 한다.
우리 대우자동차 헬스동우회는 회사가 89년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복지회관을 세우고 그 안에 체력단련장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최초의 회원들은 대부분 건강유지 차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비만으로 고민하던 회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운동 경력이 한두해 쌓이면서 94년부터는 경기에도 출전하기
시작했다.
"94년 미스터 인천 선발대회"에 첫 출전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 이후로는 해마다 입상자를 내며 우리 동우회의 위상을 높였다.
96년도에는 김양균 회원과 이민재 회원이 65kg급과 85kg급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으며 작년에는 오형근 회원이 60kg급 3위를, 김양균 회원이 장년부
2위를 차지했다.
올해에는 인천 지역대회를 뛰어넘어 전국대회에도 참가해 볼 계획이다.
96년에 85kg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민재 회원의 경우 1백kg에 육박하는
비만으로 시달리다가 우리 모임에 들어온 이후 85kg으로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힘든 운동을 하다보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기 때문에 머리가 길면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 회원 대부분이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다닌다.
운동을 마치고 가끔 회원들과 어울려 회사 근처 술집에서 소주라도 한잔
기울일 때가 있는데 주위 좌석의 손님들이 모두 겁을 낸다.
울퉁불퉁한 가슴팍에 머리는 한결같이 짧은 것이 영락없이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것이다.
가끔은 진짜폭력배들이 나타나서 시비가 생길 때도 있으나 우리 회원들의
깊고 넓은 인간성에 감복하고 돌아간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