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천주교인들은 도성에 있는 서소문을 "죽음의 문"이라 불렀다 한다.

신유대박해 이후 이 문이 천주교인들의 처형을 위한 통로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특히 "서소문밖 네거리"는 1백명이 넘는 교우들이 순교한 곳으로 유명하다.

서소문밖 네거리는 형장으로 현재 그 위치를 정확히 알수는 없다.

아현고가도로밑 의주로파출소에서부터 서울역방향의 어느 곳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약현언덕에 고종29년(1892년)에 성당 하나가
세워진다.

이름하여 약현성당으로 지금은 천주교 중림동교회다.

프랑스 신부 코스트(J Coste)의 설계로 세워진 이 성당은 한국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이다.

길이 32m,폭 13m, 탑높이 22m, 넓이 1백20평규모다.

삼랑식의 약식화된 고딕건물로 뾰족아치 대신 둥근아치를 쓴게 특징이다.

이 성당에는 프랑스 빌르드외에서 제작된 한국 최초의 서양종이 있다.

무게는 4백42kg으로 세례명은 요셉 구스타프 잔느이다.

1백년이 지난 오늘날도 하루 세번씩 타종하고 있다.

약현성당에는 신유(1801) 기해(1839) 병인(1866)박해때 서소문밖에서
순교한 1백19명중 성인으로 선포된 정하상바오로등 44위의 성인을 모시는
순교자기념관이 있다.

이 성당은 서울에서는 명동성당 다음으로, 전국서는 아홉번째로 설정된
성당이다.

설립 당시 가깝게는 경기도 광주 과천 양주로부터, 멀리는 송도(개성)
황해도의 백천까지 광범한 지역을 관할했다 한다.

이같이 유서깊고 귀한 약현성당이 지난 정월대보름날 한 부랑자의 어이없는
방화로 수난을 겪었다.

목조에 동판을 덧씌운 종탑이 반쯤 타버리고 파이프오르간, 수십년된
성화, 성요셉조각상, 성모상 등 성물 여러점이 불탔다.

6.25동란에도 무사했던 이 건물이 허무하게 피해를 입자 각지에서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다.

교구에서는 관계당국과 복원문제등을 협의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천주교가 지난 2백주년때 적지않은 기념사업을 하면서 약현성당의
성역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

최고의 성지에 걸맞는 곳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