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12일 보증채무의 신용대출 전환 주장을 내놓은 이유는 상호지급보증
관행이 현시점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구조조정의 가속화를 재촉하고 있는 새정부측이나 한계부문의 정리를 통한
거래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바라고 있는 금융권 모두 상호지보 관행이
계속되는 한 기대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에 다름아닌 것이다.

혼자 망하면 그만인 작은 부실계열사 하나가 그룹 전체를 부도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이 상호지보인 만큼 이를 철폐하자는 주장이 절대로 기업입장
에서만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날 회장단회의에서 모그룹회장은 "서너개 계열사가 서 있는 보증을
대출금 상환 등으로 풀지 않으면 작은 회사 하나도 마음대로 팔수 없다"며
"이대로라면 구조조정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이라도 연쇄부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호지보라는 "마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는 판단을
재계가 하고 있다는 셈이다.

그러나 재계의 이런 주장이 정치권과 금융권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정부측은 여전히 상호지보를 통한 대기업그룹의 확장행태를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금융권으로서도 이미 신용여력이 없는 회사가 대부분인데 지급보증마저
없어질 경우 부실채권을 몽땅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인게 사실이다.

재계는 그러나 회장단의 이날 제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새정부측이 모든 부문의 국제수준화를 추구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그렇다.

금융부문에서도 보증이나 담보보다는 신용대출의 비중을 늘려 가는 것이
국제표준화를 지향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또 이미 3월부터 신규 상호지보가 금지된 만큼 대출 연장시 상호지보가
불가능해 1~2년 내에는 상호지급제도가 자연히 없어질 것이란게 재계의
설명이다.

이병욱 전경련 기업금융팀장은 "지난 93년 자기자본대비 4백70%에 달했던
30대그룹의 상호지보규모가 지난해에는 91.3%로 낮아지는 등 연대보증을
없애온 것이 추세였다"며 "이를 조기에 0%로 낮추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경련 김태일 이사도 "신용대출로 전환할 때 기존 담보가 부족한 대출에
대해서는 차등금리를 적용하면 금융권으로서도 손해볼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신용보증보험 등이 기업들의 보증대행 상품을 개발, 기업에 판매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계열사 상호보증대신 대주주들의 연대보증을 강화하는 방안 등
지보해소에 따른 보완책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일부 한계계열사의 도산도 감수하겠다는
회장들의 이같은 주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