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미국의 여론이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음은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하겠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지난 11일 하원 세출소위에 출석, 미국의
무역적자는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크게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런가 하면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미국의 증자안을 놓고 미국
행정부와 재계가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80개 대기업 총수들은 11일 미국의 유력신문들에 게재된 공개서한에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에 걸맞는 결단이 필요하다"며 의회가 행정부의
대IMF 1백79억달러 지원법안을 승인토록 촉구했다.

특히 이 공개서한에는 카터, 포드 등 전직 대통령을 포함, 정계 지도자들도
대거 동참해 의회내의"IMF논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의회 최고실력자중 한사람인 제시 헬름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IMF의
고금리-초긴축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고 아시아지역에 대한 경제활성화 조치를
요구해 관심을 끌고 있다.

"아시아 경제를 살리자"는 이같은 움직임은 바로 얼마전 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대해 미국 여론이 보여주었던 냉담한 시각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우리는 미국의 이같은 시각전환이 비록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과 파장을 올바르게 인식하려는 진지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아 높이 평가한다.

지난 수년동안 세계 각국은 미국을 위시한 경제대국들이 강대국위주로
만든 범세계적 금융시스템과 지구촌 경제라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과정에서 특히 금융및 경제 관행이 구미 선진국과 크게 다른 아시아
개도국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아시아 금융위기는 바로 이같은 생소한 체제에의 적응력 부족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할수 있다.

이렇게 볼때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당사국만의, 또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당사국의 노력 못지않게 광범위한 국제공조가 필요하며 특히
새로운 세계금융질서의 맹주격인 미국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루빈 재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지도층이 "아시아는 미국의
중요한 시장"이라는 논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시각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아시아는 미국 총수출액의 30%를 소화해내는 황금 시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단순한 상품시장이 아니라 미국과 대등한
선의의 경쟁자이자 경제-안보 파트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같은 성숙된 시각에서 이뤄지는 지원만이 진정으로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수 있다.

한국 등 위기당사국들도 모처럼 미국에서 일고있는 "아시아의 경제살리기"
무드를 위기극복의 전기로 활용하기 위해 가일층 분발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