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파업 여부를 놓고 진통을 겪던 12일 신문사에는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국가경제가 쓰러져 가는데 총파업이 웬말이냐, 경제를 볼모로 총파업을
벌이려는 속셈이 무엇이냐, 언론은 이를 방관할 셈이냐....

독자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따져 물었다.

민주노총에도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전화 뿐이 아니었다.

택시를 타도 음식점에 가도 총파업을 규탄하는 얘기 일색이었다.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런 상황에서 열렸다.

회의에서는 총파업을 강행하자는 주장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 과정에서 회의장 밖으로 고성이 새나오기도 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의는 자정이 임박해서야 "철회" 결정을 내리고
끝났다.

단병호 비대위위원장의 심야기자회견을 지켜 보면서 기자는 두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고 결정을 번복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을 제안해 이를 관철시켰던 강경파로서는 총파업을
철회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를 무릎쓰고 민심을 좇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둘째는 총파업보다 무서운 것이 민심이라는 점이다.

96년말 노동법파동때는 대통령이 말려도 총파업은 강행됐다.

정리해고제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데다가 여당의
정리해고법안 기습처리를 민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심이 총파업을 막았다.

총파업 철회 결정은 집단의 힘이 결코 민심을 누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
주었다.

노동계는 물론 정치권과 재계도 이를 절감했을 것이다.

김광현 < 사회1부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4일자).